아직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했다면..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에베소서 1장 4-5, 7-11절 : 4)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게 하시려고 천지창조 이전에 이미 우리를 뽑아 주시고 당신의 사랑으로 우리를 거룩하고 흠없는 자가 되게 하셔서 당신 앞에 설 수 있게 하셨습니다. 5)하느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뜻하시고 기뻐하시는 일이었습니다. … 7)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죄를 용서받고 죄에서 구출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풍성한 은총으로 8)우리에게 온갖 지혜와 총명을 넘치도록 주셔서 9)당신의 심오한 뜻을 알게 해 주셨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시켜 이루시려고 하느님께서 미리 세워 놓으셨던 계획대로 된 것으로서 10)때가 차면 이 계획이 이루어져서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이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고 하나가 될 것입니다. 11)모든 것을 뜻하신 대로 이루시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계획을 따라 우리를 미리 정하시고 택하셔서 그리스도를 믿게 하셨습니다. (공동번역)

한 인간의 생애에서 대단히 귀한 일, 꼭 있어야 할 일이 성취되었을 때에 ‘이미 오래전부터 하느님께서 계획하셨던 일이 이루어진 것이다’는 감사의 뜻을 담은 신앙고백을 하느님께 드립니다.

가령 부부가 진정 사랑하는 사이라면, “우리는 천생연분이다” 라는 전래되어 오는 표현도 쓸 수 있겠지만, “하느님께서 예정하신 바 있어서 이렇게 짝맺어 주셨다”는 표현을 하기도 합니다.

만약 제가 지금껏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하면 정말 아찔합니다. 제 죄사함의 큰 일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어서, 지금껏 살아 있을 리가 만무하지만, 만약 살아 있다 하더라도, 나는 날마다 술주정뱅이가 되어, 저 자신도 저를 어쩌지 못하고, 제 사랑하는 식구들도 저를 큰 짐으로 여겨, 어떤 처량한 신세가 되어 있을지 아무도 모릅니다. 아, 상상하기도 싫습니다.

그래서 제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사건은 제 생애에 있어서 꼭 있어야 할 일이었지만, 제 지혜로 된 것도 아니었고, 제 양심으로 된 일도 아니었고, 이것은 우연으로 되는 일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오묘막측해서, 저도 사도 바울의 말씀대로, 하느님의 예정하신 바가 있었다고 밖에는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하느님의 예정하신 바가 없었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한다는 말인가, 이런 질문을 제기할 수가 있습니다. 바로 여기서부터 예정론 신학논쟁이 벌어집니다. 신앙의 고백으로 하느님께 아뢴 말씀, 곧 “하느님께서 예정하신 바가 있어서” 라는 말이 신학논쟁의 도마 위에 오르는 겁니다. 그렇게 되라고, “천생연분”이니, “하느님의 예정하신 바가 있어서” 이런 말을 한 것이 아니었었는데, 이것이 신학논쟁의 핵심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첫째로, 예정되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신앙생활을 잘 해 본들 구원을 못 받게 될 것이니, 애써 신앙생활을 할 필요가 없지 않느냐, 하는 질문이 생길 수가 있습니다. 논리적으로 이런 질문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예정된 사람이라면, 아무리 지금 세상을 개차반으로 살아도, 하느님께서 구원하시기 마련이라면, 그러면 누구든 세상을 아무렇게 살아도 상관할 바가 아니라는 이야기냐, 이런 질문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것도 이론적으로는 맞는 이야기가 됩니다.

셋째로, 그러면 예정론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교리 아니겠느냐, 말해 봤쟈 아무런 도움도 안 되는 이런 교리를 왜 만들어 가지고 골치 아프게 하느냐, 이런 질문도 가능한 것입니다.

결국 구원의 하느님 앞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저 같은 쓸데 없는 인간을 일찌기 선택해 주셔서,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은총으로 죄를 사하시고, 구원해 주신 것은, 하느님의 일방적인 예정이고 사랑이셨다” 하고 신앙고백을 한 것은, 결코 신학교 교실에서 논쟁하라고 한 말이 아닌데, 엉뚱하게도 신학교의 논쟁꺼리가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신앙고백은 신앙고백입니다. 이것을 논쟁꺼리로 삼는 이들이 우둔한 짓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시인이 이렇게 읊었습니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 소쩍새는 봄부터 그렇게 울었나보다” 대단히 감동적인 시입니다. 그러면 소쩍새가 울지 않았으면 국화꽃이 피지 않느냐를 가지고 국문학 교실, 아니면 생물학 교실에서 이 시를 가지고 논쟁을 해서는 안 되지요.

저와 하느님의 관계는 ‘천생연분’이었습니다. “일찌기 예정하신 바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모든 인류들에게 동등한 구원의 계획이셨습니다. 누구는 구원하고 누구는 구원에서 예외하시려는 조치가 아니었습니다. 믿는 사람은 다 구원하시려는 계획이셨습니다. 다만 십자가의 구원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이 구원의 은혜가 배척을 받게 될 뿐입니다.

<기도> 주님의 구원을 찬양합니다. 놀라우신 섭리로 인도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이 영광스러운 은총에 대해서 아멘하고 받아 들여, 그들 자신에게 기쁨이 되며, 하느님의 기쁨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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