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상황이 다 지나기 전에

마태복음 11장 20-24절 : 그 때에 예수께서는, 자기가 기적을 많이 행한 마을들이 회개하지 않으므로, 꾸짖기 시작하셨다. “고라신아, 너에게 화가 있다. 벳새다야, 너에게 화가 있다. 너희 마을들에 행한 기적들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했더라면, 그들은 벌써 굵은 베 옷을 입고, 재를 쓰고서, 회개하였을 것이다.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화가 있다. 너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치솟을 셈이냐? 지옥에까지 떨어질 것이다. 너 가버나움에서 행한 기적들을 소돔에서 행했더라면, 그는 오늘까지 남아 있을 것이다.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새번역)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하신 목적은, 그 기적을 본 사람들이 회개하기를 바라셔서 보여 주신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기적은 그냥 보고 놀라면 되는 일이 아니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경험하면서, 거룩하신 하나님, 의의 하나님 앞에서 인간이 회개하기를 바라셔서 기적을 행하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벳새다와 가버나움에서는 많은 기적을 베푸셨다는 말씀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고라신에서 어떤 기적을 베푸셨는지 성경에 별다른 기록이 없어서,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하시는 말씀은, 그 세 곳 지방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많이 보여 주신 것은, 그들이 회개하라고 어느 곳보다 많은 회개의 기회를 주신 것이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들은 회개하지 않았다고 꾸중을 하신 것입니다.

지금 우리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코로나-19 라는 비극적 상황 앞에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세계는 다 함께 건강 상으로, 사회생활로, 경제적으로, 문화생활로, 교육적으로, 한없이 위축되어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런 전염병은 인류가 드물게 경험합니다. 이 상황이 언제 끝날런지 알 사람도 없고, 또 알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것을, ‘하나님의 저주’ 라고 어느 교인 분께 말씀 드렸습니다.

그러나 그 분은 제게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물론 견디기 힘든 상황인 것은 두 말 할 필요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기회라면 기회인 것은 분명합니다. 무엇보다, 회개의 기회라고 저는 믿는데, 만약 코로나 상황이 종식되었는데도, 나의 회개가, 또 교회의 회개가 온전히 이루어지지 못한 채로 남아 있다면 그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또, 신자 개인이나 교회가 하나님 앞에서 새로운 마음자세로 새로운 시작을 하지 못한 채, 코로나 상황이 종식되는 것은 저는 원치 않습니다.” 그러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참으로 중요한 말씀이라고 그분에게 감사를 드렸습니다.

주님께서 21세기 한국교회를 향해서 주시는 말씀으로 이 본문을 읽는다면 이렇게도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1970년대로부터 시작해서 서울 여의도 신-구교 대집회에서 보였던 그 풍성한 은혜의 역사를, 또 각 기도원과 크고 작은 모든 교회들에 내린 놀라운 성령의 역사를, 만약 평양과 원산에서 행했더라면, 그들은 벌써 김모 위원장을 비롯해서 모든 군부 지도자들이 재를 쓰고 회개하고, 한반도는 새로운 역사를 시작했을 것이다.” 이런 말씀이 되지 않겠습니까?

저는 이런 생각을 자주 합니다. 한국의 교회들이 진정 거듭나기 위해서, 만약 한반도 통일이 그 어느 날 문득 이루어질 수 있다면, 북한 땅에서 지금껏 불지옥 같은 강제노동감옥에 갇혀서 짐승같은 취급을 받으면서 믿음을 지켜 내신 분들이, 한국의 ‘무너진 제단’(?)을 다시 쌓는 일이 있어야, 변화가 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아주 두려운 생각입니다마는, 당연한 일로 그런 생각에 다다르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 주 하나님, 이 코로나를 어서 종식시켜 주시옵소서. 하지만 더욱 급하게 이루어 주실 일은 저희의 회개가 온전히 이루어지게 도와 주시옵소서. 그리고 하나님 안에서 저희의 새로운 시작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능력의 팔로 코로나를 종식시켜 주셔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며 새 날을 맞이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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