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하실 분은 오직 하나님뿐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삼상 7장 1-5, 12-13, 25-26절 : 주님께서 사방에 있는 모든 원수에게서 다윗왕을 안전하게 지켜 주셨으므로, 왕은 이제 자기의 왕궁에서 살게 되었다. 하루는, 왕이 예언자 나단에게 말하였다. “나는 백향목 왕궁에 사는데, 하나님의 궤는 아직도 휘장 안에 있습니다.” 나단이 왕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임금님과 함께 계시니, 가셔서 무슨 일이든지 계획하신 대로 하십시오.” 그러나 바로 그 날 밤에 주님께서 나단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내 종 다윗에게 가서 전하여라. ‘나 주가 말한다. 내가 살 집을 네가 지으려고 하느냐? … 내가 네 몸에서 나올 자식을 후계자로 세워서, 그의 나라를 튼튼하게 하겠다. 바로 그가 나의 이름을 드러내려고 집을 지을 것이며, 나는 그의 나라의 왕위를 튼튼하게 하여 주겠다.” … “주 하나님, 주님께서 주님의 종과 이 종의 집안에 약속하여 주신 말씀이 영원히 변하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그래서 사람들이 ‘만군의 주님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다!’ 하고 외치며, 주님의 이름을 영원토록 높이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궤는 예배의 중심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의 궤를 잘 모시는 것이 옳겠다고 보았습니다. 바른 생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은 달랐습니다. 전쟁으로 손에 피를 많이 묻힌 자(다윗)의 손으로 지은 성전에 거하실 생각이 없으셨습니다(역대상22:6-16). 그래서 그의 후계자(솔로몬)의 손으로 지은 집을 원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 하나님의 집의 거룩하심, 우리들의 예배의 거룩을 보존하려는 노력이 요긴함을 말해 줍니다.

<시편 89편 30-34절 : 그러나 그의 자손이 내 법을 내버리고 내 규례를 따라서 살지 않고, 내 율례를 깨뜨리고 내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나는 그 죄를 물어 채찍으로 치고 그 죄악을 물어 매질할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 약속한 나의 진실함은 변하지 않을 것이며 나는 내 언약을 깨뜨리지 않으며, 내 입으로 말한 것은 결코 번복하지 않는다.>

다윗의 왕조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후손들이 하나님을 떠나지 않는 한, 다윗의 왕조는 하나님께서 보존하시리라는 약속입니다. 이것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과의 약속이기도 합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을 떠나지 않는 한, 하나님께서는 우리들과 함께 계실 것입니다. 비록 ‘코로나 상황’이 되었더라도, 마치 코로나 이후의 시대에는 하나님의 주권을 벗어나게 될 것처럼 여기는 자들에 대한 경고이기도 합니다.

<에베소서 2: 14-16절 :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이 양쪽으로 갈라져 있는 것을 하나로 만드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 사이를 가르는 담을 자기 몸으로 허무셔서, 원수 된 것을 없애시고, 여러 가지 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습니다. 그분은 이 둘을 자기 안에서 하나의 새 사람으로 만들어서 평화를 이루시고,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이 둘을 한 몸으로 만드셔서, 하나님과 화해 시키셨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인류의 하나님이십니다. 다만 이스라엘을 먼저 택하셔서 그들을 구원의 도구로 삼으셨기 때문에, 복음이 먼저 유대인에게 전해졌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도구가 된다는 것은 영광스럽기는 하지만, 자랑거리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어느 민족이나 다시 하나님의 도구로 쓰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역사를 보면 하나님께서 들어서 쓰신 민족들이 다양한 것을 봅니다. 다만 사명을 잘 감당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가복음 6장 53-56절 : 그들은 바다를 건너가서, 게네사렛 땅에 이르러 닻을 내렸다. 그들이 배에서 내리니, 사람들이 곧 예수를 알아보고, 그 온 지방을 뛰어다니면서, 예수가 어디에 계시든지, 병자들을 침상에 눕혀서 그 곳으로 데리고 오기 시작하였다. 예수께서, 마을이든 도시이든 농촌이든, 어디에 들어가시든지, 사람들이 병자들을 장터거리에 데려다 놓고, 예수께 그 옷술 만에라도 손을 대게 해 달라고 간청하였다. 그리고 손을 댄 사람은 모두 병이 나았다.>

예수님 일행은 쉴 새가 없었습니다. 심지어 음식을 먹을 겨를조차 없었다고 했습니다(막6:31). 그래서 좀 쉬시기 위해서 배를 타고 갈릴리 건너편으로 가셨는데, 사람들이 예수님 일행인 줄 알아보고는 곧 병자들을 데리고 몰려 들었던 것입니다. 인간은 자신들의 급한 일을 위해서는 이렇게도 열심일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일, 곧 ‘하나님을 믿는 일’(요6:29)에는 등한합니다. 코로나로 인한 조치 가운데는 교회로 모이는 일을 제한하는 규정도 생겼습니다. 이것이 핑계가 되어, 하나님의 일에 무관심해진다면, 문제입니다.

<기도> 구원의 하나님, 저희의 구원을 위하여 코로나 문제도 허락하신 것을 믿습니다. 저희의 회개가 온전한 회개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의 사명감도 온전케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모든 것에 고침을 받고, 새롭게 시작하는 계기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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