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마태복음 13장 24-30절 : 예수께서 또 다른 비유를 들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자기 밭에다 좋은 씨를 뿌리는 사람과 같다. 사람들이 잠자는 동안에 원수가 와서, 밀 가운데에 가라지를 뿌리고 갔다. 밀이 줄기가 나서 열매를 맺을 때에, 가라지도 보였다. 그래서 주인의 종들이 와서, 그에게 말하였다. ‘주인 어른, 어른께서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에서 생겼습니까?’ 주인이 종들에게 말하기를 ‘원수가 그렇게 하였구나’ 하였다. 종들이 주인에게 말하기를 ‘그러면 우리가 가서, 그것들을 뽑아 버릴까요?’ 하였다. 그러나 주인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아니다. 가라지를 뽑다가, 가라지와 함께 밀까지 뽑으면, 어떻게 하겠느냐? 추수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추수할 때에, 내가 추수꾼에게, 먼저 가라지를 뽑아 단으로 묶어서 불태워 버리고, 밀은 내 곳간에 거두어들이라고 하겠다.’” (새번역)
한글사전에 보면, ‘가라지’는 ‘강아지풀’의 다른 이름이라고 했습니다. 신약성경 헬라어 원문에는 ‘지자니아’ 라고 했는데 이것은 밀밭에서 잡초로 자라는 ‘독보리’를 말합니다. 한글성경에서 처음부터 ‘가라지’로 번역했기 때문에, ‘가라지’가 한국 교회에서 너무도 익숙해 있어서, 이것이 ‘독보리’ 인 줄을 알면서도, 고치지를 못하고 쓰고 있습니다.
어떻든 교회 안에 ‘가라지’도 섞여 있을 수 있습니다. ‘잠자고 있는 동안에 악한 자가 뿌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들의 영혼이 잠자면 안 된다는 말씀이지요.
가라지를 솎아 버리고 싶어도, 뿌리가 밀과 뒤얽혀 있기 때문에, 알곡인 밀이 함께 뽑힐까 염려스러워서 ‘추수 때까지’ 참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인맥으로 얽혀 있기 때문입니다. 혹은 친구관계로, 혹은 혼인관계로, 혹은 돈거래로, 혹은 교회직분상으로, 혹은 직장관계로, 서로는 뒤얽혀 있어서, ‘가라지’를 뽑으려다가 밀이 타격을 입기가 쉽습니다.
주님께서 친히 비유 해석(38절)을 해 주셨는데,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 이라고 하셨습니다. 연관된 유사한 표현에서 가라지, 곧 ‘악한 자의 아들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노골적으로 부인하는 자들”(요8:44), “주님의 길을 굽게 하는 자들”(행13:10), “(행실의) 열매가 의심스러운 자들”(요일3:10) 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의 서신에서는 이 가라지를 ‘거짓 복음’( 또는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라고 표현했습니다(갈라디아서 1장 6절 이하). 물론 ‘구원파’니 ‘신천지’니 하는 것들도 여기에 속할 것입니다. 그러나 더 심각한 ‘가짜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교회 안에서 오히려 주인 행세를 하고 있는 ‘가라지’들입니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존 스토트가 그의 ‘제자도’ 서두에서 선언하듯이, 첫째는 ‘종교다원주의자’들이요, 둘째는 ‘물질주의’적 구원론, 축복론에 집착하는 교회지도자들과 그들을 추종하는 무리들이며, 셋째는 ‘윤리적 상대주의자들’(절대적 윤리 기준은 없다는 주장을 하는 이들)이며,
넷째는 뉴에이지 운동과 같은 ‘나르시스트’(지나친 자아도취자)들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에게 정면 도전해야 하는 것이지 도피하지도 말고, 그들에게 순응하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존 스토트, 제자도, 김명희 옮김, 21-31쪽)
저는 저 자신이 ‘가라지’가 아닌가 먼저 생각해 봅니다. ‘가라지’는 마귀에게 조종 당하는 무리들이라 했으니, 제가 마귀에게 조종 당하고 있지 않는 한, ‘가라지’의 운명을 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께 날마다 매어달리고 순종하며 살기를 기도합니다.
‘가라지’로 보이는 이들이 교회 안에 있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해 봅시다. 주님의 말씀은 ‘가만히 두라. 추수 때에 가서 가라지를 먼저 거두어 불사를 것이다’ 하셨습니다. “밀을 해치는 데도 가만히 둡니까?” 이렇게 탄원을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여전히 그저 두라고 하십니다. 주님은 여유만만하신 것인가요, 아니면 속수무책인 것인가요? 아닐 것입니다. 그들을 채나 키로 삼아서, 알곡이 알곡 되게 하는 일을 도우실 것입니다.
<기도> 만유의 주재이신 하나님, 먼저 저희 자신이 충실한 밀 이삭으로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비록 가라지들이 웃자라고 있어도 상심하지 않게 해 주시고, 저희 자신의 알곡됨에 전심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