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마가복음 8장 34-38절 : 그리고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무리를 불러 놓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오려고 하는 사람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구할 것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이득이 있겠느냐? 음란하고 죄가 많은 이 세대에서,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인자도 자기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거룩한 천사들을 거느리고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 (새번역)
성경에서 ‘십자가’는 통상 예수님께서 지신 ‘대속의 십자가’를 의미합니다. 다른 사람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지는 십자가인 것이지요. 그러면 오늘의 본문에서처럼, ‘인간이 져야 하는 십자가’ 란 무슨 십자가일까요? 예수님께서 지신 대속의 십자가와는 다른 것을 의미할 터인데, 과연 어떤 십자가를 지라고 하시는 것일까요?
1970년대에 군사 독재를 했던 박대통령은, 자기는 조국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독재를 했다고 역사에 기록이 되어도 좋다는 뜻으로 “십자가를 지겠다” 는 말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 표현은, 예수님께서 지신 대속의 십자가와 혼동되면 안 됩니다.
또 어떤 정치집단의 집단적인 과오를 가리기 위해서 한 사람이 자결을 해서 더 이상 깊이 있는 수사를 막아 버리는 일이 있습니다. 또 부모가 자기 자녀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온갖 수고를 아끼지 않는 일이 있습니다. 이런 모든 희생이 아무리 고결해 보여도, 거기다가 ‘십자가’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적어도 기독교인이라면 삼가야 할 일입니다.
교회를 위하여, 하늘나라의 복음을 위해서, 목숨을 빼앗기신 분들이 기독교역사에 많이 계십니다. 교회는 그들을 기념은 하면서도, 그들이 ‘십자가를 졌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의 죄를 대속하신 ‘예수님의 공로를 드높여 드린다’는 의미에서 인간들의 희생을 별도로 평가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도 너희 십자가를 져라” 하셨습니다. 과연 제자들은 주님의 복음을 전하다가, 생명을 바쳤습니다. 모두 순교를 당한 것입니다. 다만 요한 만이 터키의 밧모 섬에서 노년까지 살아서 헌신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은총으로 대속함을 입어 구원을 받은 사람이라면, 자신도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닮아, 제 십자가를 지고 사는 것이 마땅합니다. 이것을 예수님께서 교훈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목숨을 바쳐 복음을 전했고, 목숨이 다하도록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다가 하늘 나라로 갔고, 목숨을 다해 교회의 신앙을 지키다가 생명을 바쳤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수많은 해외선교사들이 코로나 상황에도 선교현장을 차마 떠날 수가 없어, 현장을 지키시다가 코로나에 감염되었지만, 의료의 혜택을 받을 수가 없어서 숨지신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모두 십자가의 정신으로 사신 분들입니다.
오늘은 도미닉(1170-1221) 이라는 분의 기념일입니다. 그는 스페인의 디에고 주교와 함께 알비겐세 지방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주교는 살해를 당했는데, 도미닉은 살아 남아, 그 이후 5년간 지속된 전쟁 중에도 선교동역자들과 더불어 이방인 선교를 위해 전심하면서, 수도원, 특별히 여성을 위한 수도원을 설립하여, 복음전파자를 양성하는 등, 교회의 근간을 바로 잡는 일에 헌신했습니다.
<기도> 거룩하신 하나님, 저희도 저희 몫의 십자가를 지고, 복음진리를 수호하고 전하며, 교회의 보전과, 하나님의 사랑을 펼치는 일에 헌신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