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요한복음 6장 35, 47-51절 :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내게로 오는 사람은 결코 주리지 않을 것이요, 나를 믿는 사람은 다시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믿는 사람은 영생을 가지고 있다. 나는 생명의 빵이다. 너희의 조상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다. 그러나 하늘에서 내려오는 빵은 이러하니, 누구든지 그것을 먹으면 죽지 않는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나의 살이다. 그것은 세상에 생명을 준다.” (새번역)
제가 어렸을 때, 피난시절에 저희는 대단히 가난했습니다. 그때에 저희 어머니는 밤에도 쉬지 못하고 일을 하셨습니다. 아동복에 수를 놓는 일을 하시던 때에는 늘 꼬박 밤을 새우셨습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후, 어머니는 반포아파트에서 청소부로 매일 걸레질을 하셨습니다. 우리 일곱 형제를 먹여 살리려고 못하신 일이 없었습니다. 밥상을 대하면, 정말 어머니의 살을 먹는 느낌이었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죽을 운명이었던 우리를 위하여, 우리 대신 십자가에 오르시고, 대속의 죽음을 죽으신 예수님 때문에 우리는 새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생각하면, 우리는 주님께서 살을 찢기시고 피를 흘리심으로 우리가 살게 되었다는 사실을 믿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구원의 주님을 기억하면서, 성찬식을 행합니다. 성찬식에서 우리는 떡을 떼어 나누고, 포도주를 마심으로 주님의 십자가 위에서 이루신 일을 기념합니다.
헝가리의 많은 교회들은 교회 성구 위에 사다새(펠리컨) 모양의 상징을 사용하고 있답니다. 그것은 사다새의 희생적 사랑을 따서, 예수님의 상징으로 쓰고 있는 것입니다. 사다새는 그 어느 새들보다 모성애가 지극한 새인데, 새끼들에게 먹을 것을 더 줄 것이 없으면, 자기 가슴팍의 살을 뜯어 새끼들에게 먹인다고 합니다.
새끼들이 병들어 죽어가면, 자기 가슴을 쪼아서 피를 내어 새끼에게 먹이면서, 어미는 죽어간다고 합니다. 흡사, 우리 인간의 죽을 운명을 면하게 하시기 위해 죽음의 길을 택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과 같습니다. 그래서 중세기 대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성체성가 가사를 쓰면서, 그리스도를 어미 펠리컨에 비유했습니다.
성찬식을 매일 한 번 씩 드리는 예전적 교회들이 있습니다. 저는 그런 교단에 속하고 있습니다. 자주 성찬식에 참예하면, 성찬식이 일상이 되어, 감동이 약해지는 점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자주 드린다고 감동이 약해지기보다는, 저 자신이 주님의 성찬을 닮은 삶을 살지 못해서 성찬식의 감동이 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저에게 헛된 꿈을 품고 세상을 살지 않고,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고 살도록 만들어 주신 은혜를 생각하면서, 하루하루를 살고 있으면, 제가 참예하는 성찬도 깊은 감동이 있습니다.
워즈워드의 시, ‘무지개’의 마지막 연에 “비나니, 내 생애의 나날이 자연에의 경건으로 이어지기를” 했는데, 이 싯귀의 패턴을 빌려서, “비나니, 내 생애의 나날이 성찬의 감동으로 이어지기를” 하고 염원합니다.
<기도> 영혼의 양식으로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 귀한 양식으로 저희가 새 생명을 얻게 하시며, 하늘나라에 이르도록 영혼의 굶주림과 기갈이 없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