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을 전하는 최상의 수단, ‘한 마디’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사도행전 21장 39-40절, 22장 3, 5-8, 10절 : 39)바울이 대답하였다. “나는 길리기아의 다소 출신입니다. 저 사람들에게 내가 한 마디 말을 하게 허락해 주십시오.” 40) 천부장이 허락하니, 바울은 층계에 서서, 무리에게 손을 흔들어 조용하게 하였다. 잠잠해지자, 바울은 히브리 말로 연설을 하였다.

3)나는 유대 사람입니다. 나는 길리기아의 다소에서 태어나서, 이 도시 예루살렘에서 자랐고, 가말리엘 선생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의 율법의 엄격한 방식을 따라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오늘날 여러분 모두가 그러하신 것과 같이, 하나님께 열성적인 사람이었습니다. …

5)나는 거기(다마스쿠스)에 있는 신도들까지 잡아서 예루살렘으로 끌어다가, 처벌을 받게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6)가다가 정오 때쯤에 다마스쿠스 가까이에 이르렀는데, 갑자기 하늘로부터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추었습니다. 7)나는 땅바닥에 엎어졌는데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8)그래서 내가 ‘주님, 누구십니까?’ 하고 물었더니, 그는 나에게 대답하시기를 ‘나는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이다’ 하셨습니다. …

10)그 때에 내가 ‘주님, 어떻게 하라 하십니까?’ 하고 말하였습니다. 주님께서 내게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서, 다마스쿠스로 가거라. 거기에는 네가 해야 할 모든 일을 누군가가 말해 줄 것이다.’ ” (새번역) >

우리를 구원하시는 말씀은 ‘한 마디 말씀’입니다. 바울이 천부장에게 부탁하는 말이, 자기를 죽이려고 달려드는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한 마디 말만 전할 수 있게 허락해 주십시오” 했습니다. 허락을 하자, 바울은 회심의 간증을 시작했습니다.

‘한 마디’가 좀 길어지기는 했지만, 어떻든 이 한 마디는 예루살렘 거리에서 바울을 죽이고자 소요를 일으켰던 무리들 만이 아니고, 지난 2천 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이 되었습니다.

또 마태복음 8장 8절에는 한 백부장이 예수님께 드리는 말씀이 있습니다. “주님, 나는 주님을 내 집으로 모셔들일 만한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마디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내 종이 나을 것입니다.” (공동번역) 라고 합니다.

제가 존경하는 어르신이 퍽 사랑하시던 찬송이 있습니다. “주여, 내게 오심을 감당치 못하니, 주 말씀 한 마디면 내 영혼 낫겠네.” 이 찬송을 부를 때마다 돌아가신 그 분이 눈앞에 어른거립니다.

최근에 오랜만에 만난 교우에게서 들은 말입니다. 저와 함께 성찬을 나누던 때를 회고하면서, 바로 이 찬송이 제일 인상 깊었다고 합니다. 이 찬송을 부르며 감격 속에 성찬을 받으러 줄 지어 제대 앞으로 나오던 날이 그렇게 그립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영혼을 깨우치는 말씀은 여러 마디의 말이 아닙니다. 단 한 마디가 우리의 영혼을 살립니다. 그 한 마디를 전하면서 사십시다.

오늘의 본문은 신앙의 수호자 사도 바울의 한 마디 간증입니다. 신약성경에 그의 간증이 때로는 길게 때로는 짧게 여러 곳에 나옵니다. 바울이 곳곳에서 이 한 마디를 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성경에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바울은 같은 간증을 더 여러 차례 반복했을 것입니다. 간증으로 우리가 믿는 기독교 신앙을 수호하고 있었습니다.

간증은, 하나님께서 살아 계셔서 지금도 구원의 역사(일)를 지속하고 계시는 것을 증거하는 일입니다. 간증은 우리 인간의 언어로 선포됩니다. 교회는 이 간증 위에 세워졌고, 또 간증을 들으러 사람들이 교회로 모입니다.

<기도>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 저희의 언어로 하나님 살아 계심을 증거하게 하시고, 또 저희의 귀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증거하는 소리에 귀 기울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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