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들 압살롬아, 너 대신에 내가 죽을 것을..”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사무엘하 18장 32절 – 19장 4절 : 왕이 에티오피아 사람에게 물었다. “그 어린 압살롬이 평안하더냐?” 에티오피아 사람이 대답하였다. “높으신 임금님의 원수들을 비롯하여, 임금님께 반역한 자들이 모조리 그 젊은이와 같이 되기를 바랍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마음이 찢어질 듯이 아파서, 성문 위의 다락방으로 올라가서 울었다. 그는 올라갈 때에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 압살롬아, 너 대신에 차라리 내가 죽을 것을,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고 울부짖었다.

왕이 목놓아 울면서 압살롬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다는 소문이 요압에게 전해졌다. 그래서 모든 군인에게도 그 날의 승리가 슬픔으로 바뀌었다. 왕이 자기의 아들 때문에 몹시 슬퍼한다는 소문이, 그날 모든 군인에게 퍼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날 군인들은, 마치 싸움터에서 도망쳐 나올 때에 부끄러워서 빠져 나가는 것처럼, 슬며시 성안으로 들어왔다. 그런데도 왕은 두 손으로 여전히 얼굴을 가린 채로, 큰 소리로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 압살롬아!” 하고 울부짖었다. (새번역) >

아버지 다윗왕에게 반역한 왕자 압살롬이 죽던 날, 아버지 다윗왕이 이처럼 처량하게 울었습니다. “차라리 내가 죽을 것을” 라고 훌쩍이면서..

말이 그렇지, 아무리 사랑하는 아들이기로서니, 아버지에게 반역한 아들을 대신해서, 현직 왕인 아버지가 아들 대신에 죽을 이유는 없습니다.

하지만, 반역한 자식들 때문에 아버지가 죽음을 당하는 일이 실제로 발생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에서 죽임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셨습니다. 죽어야 마땅한 반역한 자식들을 대신해서, 하늘 아버지께서 인간이 되셔서 대신 죽음을 당하신 것이었습니다. 진정 송구스럽기 그지없는 일이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생명의 논리보다도, 하나님의 인간 사랑은 더 위대하셨습니다. 하나님도 목숨을 내대실 만큼 하나님의 사랑은 지극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어제 아침 조간신문에서, 탈레반의 카불 진입을 앞두고, 카불공항에서 미국 수송기가 이륙할 때에 그 비행기 바퀴에 매달려 아프가니스탄을 벗어나려던 청년 3명이, 이륙한 비행기가 바퀴를 접자, 땅으로 떨어지는 장면을 보면서 아연실색했습니다.

그 사진을 보는 순간, 저는 71년 전 폭파된 대동강교의 휘어진 철교 잔해를 곡예하듯이 타고 넘어, 평양을 벗어져 피난하던 수많은 사람들의 사진이 눈앞에 떠올랐습니다. 자유를 찾아 목숨을 걸고 탈출하던 인간의 모습을,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제 머리에, “다음 차례가 혹시 우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토록 전작권 한국정부 이양을 주장하고 있는 현정권이, 남은 8개월 기간 중에, 미국이 스스로 철군을 하든가, 아니면, 한국 정부가 억지로라도 철군을 하도록 만드는 날에는, 꼼짝없이 아프카니스탄의 사태가 바로 우리의 현실이 되지 않을까 염려합니다.

71년 전과 상황이 다른 것은, 제가 어디로 피하려고 해도 피할 나이도 아니고, 피할 장소도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세대는 그렇다 치고, 우리 후손들은 어쩐단 말입니까?

다윗의 통곡을 저도 합니다. “아, 대한민국 국민들이여, 어쩌자고… 어쩌자고 일을 이렇게 만들려 한단 말입니까?”

<기도> 주여, 저희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저희들의 죄로 주님이 지으신 동산을 이런 흉악스런 소굴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주여, 구원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파멸과 죽음의 계곡에서 건져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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