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인에게서 저희를 건져 주소서”

<교회력에 따른 말씀묵상>

시편 140편 (새번역)

시편에서 종종 사용하는 ‘셀라’라는 악상기호는, 지휘자(또는 인도자)의 인도를 따라, 시편찬송을 자리에서 ‘일어나서’ 부른다는 의미로 알고 있는 것이 옳습니다. 물론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은 악기를 들고, 자리에 앉았던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서서, 곁에 있는 사람과 손을 붙잡고 큰 원을 그리며 돌아가면서 시편 싯귀를 반복해서 노래합니다.

반드시 하나님을 찬양하는 싯귀만 그렇게 노래하는 것이 아니고, 오늘의 시편 140편처럼 간절히 도우심을 비는 싯귀도 이렇게 탄원의 예배춤을 추면서 수없이, 지휘자가 ‘그만’ 하자고 할 때까지, 반복하며 춤을 춥니다.

‘셀라’가 들어간 구절을 보면, “(3절) 뱀처럼 날카롭게 혀를 벼린 그들은, 입술 아래에는 독사의 독을 품고 있습니다” 라고 노래합니다. 원수의 간교한 접근을 고발하는 싯귀입니다. 뱀이 혀를 놀리는 것을 보면, 공격 직전에 대상을 정신 나가게 만드는 동작입니다. 더구나 달려들어 이로 물면 독사의 독이 금방 상대의 몸 속으로 들어옵니다. 결정타를 맞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교사스런 뱀인 ‘적’이 우리를 어디서 어떻게 달려들지를 모르는 상태에서 살고 있습니다. 적은 우리를 할퀴고 있는데도, 우리의 대장 격인 이가 그를 일컬어 적이 아니라고 선전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얼이 빠져서, 이 ‘코로나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입을 다물고, 조용히 일의 귀추나 바라보고 있는 것이 오늘 우리들의 현실입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다시 또 하나의 싯귀로 합창하자고 읊습니다: “(5) 오만한 사람들이 나를 해치려고 몰래 덫과 올가미를 놓고, 길목에는 그물을 치고, 나를 빠뜨리려고 함정을 팠습니다.” 저도 어렸을 적에 대동강변에서 자라면서, 모래밭에 함정을 파서 동네 친구들을 놀래킨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기껏 발목이나 정강이 정도 빠지는 그런 함정이었습니다.

원수가 파는 함정은 온 몸이 세 길 함정 속에 빠져서 헤쳐 나올 수가 없게 되는 그런 함정을 말합니다. 지금 우리를 노리는 것이, 북녘의 김씨 일가일 수도 있지만, 그들과 맥을 함께 하는 중국-러시아, 또는 무슬림 국가들일 수도 있습니다.

또 하나의 ‘셀라’는 8절입니다. “주님, 악인의 욕망을 이루어 주지 마시고, 그들이 우쭐대지 못하도록, 그들의 계획이 성공하지 못하게 해 주십시오.” 그들의 대륙간 핵무기탄도탄 개발이, 또한 그들의 땅굴공략 작전이 성공하지 못하게 해 달라는 간절한 기원인 것입니다.

그러려면, 이 기원을 온 몸으로 읊조리는 자들의 삶이 어떠해야 하느냐를 노래함으로, 이 시편은 기원을 마무리합니다: “분명히 의인은 주님의 이름에 찬양을 돌리고, 정직한 사람은 주님 앞에서 살 것입니다.” 적을 물리쳐 달라고 애원하는 기도자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정직하게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기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뱀같은 적의 공략을 직면하고 있는 우리들의, 똑같은 기도인 것입니다.

<기도> 주 하나님, 독사처럼 저희를 일격에 무너뜨리려는 적의 접근 앞에서, 저희가 깨어 있게 하옵소서. 그들의 혀 놀림, 그들의 독침, 그들의 징그러운 몸짓 앞에 혼미하게 되지 않도록 저희를 지켜 주시옵소서. 구원자이신 주 하나님, 저희가 끝까지 주님을 찬양하는 대열에 서고, 정직한 자로 살렵니다. 저희를 도우시는 영원한 구원자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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