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마태복음 23장 16절 : “눈 먼 인도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다! 너희는 말하기를 ‘누구든지 성전을 두고 맹세하면 아무래도 좋으나, 누구든지 성전의 금을 두고 맹세하면 지켜야 한다’ 고 한다. 어리석고 눈 먼 자들아! 어느 것이 더 중하냐? 금이냐? 그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 또 너희는 말하기를 ‘누구든지 제단을 두고 맹세하면 아무래도 좋으나, 누구든지 그 제단 위에 놓여 있는 제물을 두고 맹세하면 지켜야 한다’ 고 한다. 눈 먼 자들아! 어느 것이 더 중하냐? 제물이냐? 그 제물을 거룩하게 하는 제단이냐? 제단을 두고 맹세하는 사람은, 제단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을 두고 맹세하는 것이요, 성전을 두고 맹세하는 사람은, 성전과 안에 계신 분을 두고 맹세하는 것이다. 또 하늘을 두고 맹세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보좌와 그 보좌에 앉아 계신 분을 두고 맹세하는 것이다.” (새번역)
맹세를 할 때, 어떤 절대적인 존재의 이름, 또는 어떤 신령한 사물을 걸고 맹세하면 믿을 만한 맹세로 쳐 주는 습관은 어느 나라 어느 민족에게서나 있는 모양입니다. 아마도 2천 년 전 유대인들은 성전이나, 성전 기물이나, 제단 위의 제물, 또는 하늘을 두고 맹세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마태복음 5장 33-36절 즉, “옛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너는 거짓 맹세를 하지 말아야 하고, 네가 맹세한 것은 그대로 주님께 지켜야 한다’ 한 것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아예 맹세하지 말아라. 하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말아라. 그것은 하나님의 보좌이기 때문이다. … 네 머리를 두고도 맹세하지 말아라. 너는 머리카락 하나라도 희게 하거나 검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는 말씀을 보면, ‘맹세’ 라는 것 자체를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들의 사회생활은 근본적으로, 법에 의한 ‘계약 관계’ 속에서 살도록 되어 있습니다. 직-간접으로 서로 사이에 마땅히 지켜야 할 법적 계약관계를 맺어, 이를 모두가 신실히 지킴으로써 사회는 유지되기 때문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세례식에서 신앙을 회중 앞에서 확인하며, 신자가 지킬 바를 교회 앞에 ‘언약’ 하게 한 다음 세례를 베풉니다. 결혼식에서도 엄숙히 ‘혼인 서약’을 합니다. 성직안수식에서는 특별히 서약내용을 구체적으로 나열하면서, 거기에 분명히 서약하여야 안수를 줍니다. 이 모든 서약행위들은 마태복음 5장 34절, 곧 ‘맹세하지 말라’ 는 주님의 명령을 위반하는 것입니까?
물론 ‘맹세’나 ‘서약’이나 말만 다르지 뜻은 같은 것이므로, 서약도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한 공동체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약속을 서로간에 해야 하기 때문에, 교회는 오래 전부터 서약을 행해 왔습니다. 그 뜻은 “나의 이 약속은 나의 당연한 의무이기도 하지만, 제가 이 약속의 테두리 안에 사는 것이 저의 기쁨입니다” 라는 뜻에서 서약을 행하는 것입니다.
다만 서약이 잘 이행되지 않아서 문제입니다. 가령 ‘혼인서약’의 진실성은, 오늘날의 흔해빠진 이혼이라는 ‘서약 파기’의 결과가, 전체 결혼의 삼 분의 일에 달하는 통계를 보면, 잘 지켜지지 않고 있음을 증명합니다. 또한 ‘성직안수 때의 서약은 잘 지켜지는가’ 라고 묻는다면, 성직자의 한 사람으로서 저는 자신있는 대답을 못 합니다.
그러므로 맹세나, 서약이나, 어떤 형태의 약속이든 간에, 인간으로서 할 수가 없는 일이라는 주님의 말씀에 동의할 수 밖에 없습니다.
어쩔 수 없이, 우리가 해야 할 말은, 결혼식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나는 당신과 변함없는 사랑을 나누며 살겠습니다” 라고 할 수 밖에 없고, 성직안수식에서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저는 하나님과 교회가 맡긴 일을 성실하게 수행하겠습니다” 라고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5년마다 한 번 씩 대통령은 국민 앞에 서약을 합니다. 성경 위에 손을 얹고 하는 나라들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떻게 하는지요?
어떻든 ‘눈 먼 인도자’들이 오늘날도 대중 앞에서 맹세를 하고, 인도자의 자리에 앉습니다. 또 그 인도자가 공언한 그 맹세를 믿는 많은 사람들이 그를 추종하며 삽니다. 이 어리석은 맹세와, 맹세에 대한 맹신의 행각이 언제까지 지속되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기도> 주여, 저희가 지키지도 못할 맹세는 하지 말게 하시고,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주님과 사람 앞에서 늘 성실한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