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마가복음 14장 3하-8절 : 예수께서 베다니에서 나병 환자이던 시몬의 집에 머무실 때에, 음식을 잡수시고 계시는데, 한 여자가 매우 값진 순수한 나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리고, 향유를 예수의 머리에 부었다. 그런데 몇몇 사람이 화를 내면서 자기들끼리 말하였다. “어찌하여 향유를 이렇게 허비하는가? 이 향유는 삼 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서, 그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줄 수 있었겠다!” 그리고는 그 여자를 나무랐다. 그러나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가만두어라. 왜 그를 괴롭히느냐? 그는 내게 아름다운 일을 했다. 가난한 사람들은 늘 너희와 함께 있으니, 언제든지 너희가 하려고만하면, 그들을 도울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여자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였다. 곧 내 몸에 향유를 부어서, 내 장례를 위하여 할 일을 미리 한 셈이다.” (새번역)
“잊어버리자고, (잊어버리자고), 바다 기슭을 걸어 보던 날이, 하루, 이틀, 사흘…” 시인 조병화의 시 ‘잊어버리자고’ 의 첫 연입니다. 바로 그 시인이 제가 고등학교 1학년 시절에 저희 학급 ‘국어작문’ 과목을 담당했던 교사였습니다.
하루는 ‘짝사랑’을 화두로 꺼내셨습니다. 그리고는 70명 정도 되는 저희 학급 학생들에게 묻기를, 짝사랑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은 손을 들라고 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손을 들었는데, 나중에 보니까 대부분의 학생들이 손을 들었습니다.
선생님은 그들을 모두 앞으로 나오라 하시더니, 너무 많으니까, 아예 복도로 나가서 정돈하라고 했습니다. 나머지 학생을 세어 보니, 대략 7, 8 명에 불과했습니다. 아마도 저는 그 가운데 속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선생님은 교실 한 구석에서 몽둥이를 찾아 드시고는, 복도에 나가 있는 학생들을 한 사람 씩 들어오라 하셨습니다. 들어오는 족족 엉덩이를 몽둥이로 한 대 씩 때리고는 자리에 들어가 앉으라 했습니다. 몽둥이로 맞은 학생들은 왜 맞았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한 시간 동안 선생님의 설명이 있었습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남자는 무릇 숭고한 정신의 여성을 찾아내서 그런 여성을 사모하면서 살도록 되어 있는 건데, 어쩜 그렇게도 미숙아들이냐” 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베다니의 이름 모를 한 여인은 진정 혼신을 다해서 존경하고 사랑할 분을 찾았습니다. 진정 숭고한 정신을 지닌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깊이 간직하고 있던 귀한 것을 그분에게 예물로 드렸습니다. 향유였습니다. 아낌없이 머리에 부어 드렸습니다. 순수한 향유였기 때문에 향기가 온 집안에 진동했습니다.
좌중에 있던 주님의 제자 몇 사람이 화를 냈습니다. “이렇게 귀한 향유를 단 번에 쏟아 붓는 얼빠진 사람이 있는가? 값이 얼만데? 팔면 삼 백 데나리온(오늘의 ‘삼 천 만원’)은 받을 텐데! 그 돈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면, 많은 사람 구제할 수 있을 것을..츳츳”
아무리 제자라 해도, 스승 예수님께서 얼마나 귀중한 사역을 하고 계신지 모른 채로 따라다닌 사람들이었습니다. 특히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의 수난으로 이루실, ‘만민의 죄를 대속하시는 제사’의 가치를 들어도 알 수가 없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장차 이루실 일을 자세히는 몰라도, 세상을 구원하실 분이라는 사실 만은 내다보고 있었던, 이 한 여인의 ‘엄숙한 예배’야 말로, 진정 드릴 만한 분에게 바친 헌물이었고, 예수님의 인정을 받으실 만한 숭고한 정신을 지닌 여인이었던 것입니다.
세상을, 단 하루를 살아도, 예수님을 알아뵙고, 그분에게 헌신한 사람으로 살 수 있다면, 참으로 가치 있는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기도> 사랑의 하나님, 주 하나님을 공경하며, 주님이 저의 전부이며, 저의 최고의 사랑이신 주님을 품고 살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