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니지요?”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마가복음 14장 18-21절 : 그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서 먹고 있을 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 곧 나와 함께 먹고 있는 사람이 나를 넘겨줄 것이다.” 그들은 근심에 싸여 “나는 아니지요?” 하고 예수께 말하기 시작하였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는 열둘 가운데 하나로서, 나와 함께 같은 대접에 빵을 적시고 있는 사람이다. 인자는 자기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떠나가지만, 인자를 넘겨주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자기에게 좋았을 것이다.” (새번역)

저는 제 부모님의 7남매(6남 1녀)의 둘째 아들입니다. 아버지가 목사였으므로 저희 집에 손님이 오시면 대체로 목사님들이었습니다. 손님이 오셔서 좌정하시면, 우리 형제들은 호출되는 것이 공식이었습니다. “얘들아, 인사드려라” 하면 작은 형제 둘은 대개의 경우 빠지고, 위로 5형제가 일렬 횡대로 손님 앞에 들어가서 인사를 드리고, 한 말씀 하시기를 서서 기다리곤 했습니다.

그때에 대부분의 손님들이 “누가 아버지 대를 이을 거냐?” 하고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아무도 대답을 안 했습니다. 우리 형제들 사이에서도 누가 나중에 목사가 될 것인지 토의를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만약 토의해서 결정이 되었다면 제가 걸리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제가 형제 중에 목사가 될 소양이 가장 부족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저 만이 아버지처럼 지금 목사가 되어 살고 있지만, 생각해 보면, 왜 손님 앞에서 준비된 대답을 못 드렸을까, 하는 후회가 듭니다. “네, 부족한 점은 많지만, 제가 아버지를 따라 목사가 될 마음이 있습니다.” 이렇게 착하게 대답을 해 드렸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하여튼 저는 어물어물하는 성격이어서, 아무에게도 분명한 대답을 못 드린 채, 목사가 되는 신학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제일 마음이 약한 아들이었기 때문이라고나 할까요? 그래서 손님들의 질문에 그만 걸려 들었다고 말이지요? 입학 면접 때에도, “왜 신학교 왔냐?”고 묻는 질문에, 분명히 “목사 되려고 왔다”고 대답을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입학을 시켜 줬습니다.

물론 신학공부는 열 아홉부터 시작했지만, 정작 목사 안수를 받은 것은 제 나이 서른 여덟 때였습니다. 19년 동안 목사가 되기 싫어서 이리 저리 피해 다니다가 종당에 제대로 붙들린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본문을 읽다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 중에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라고 말씀하실 때에, 제자들이 한 마디 씩 주님께 묻지 않습니까? “주님, 저는 아니지요?” 라고. 이게 뭡니까? 자기가 아니면 아닌 것이지, 뭘 묻고 있느냔 말입니다.

같은 종류의 나약한 인간인 저로서도, 저 자신을 보는 것 같아서, 부끄러워지는 것입니다.

왜냐구요? 제자들의 이 질문(“저는 아니지요?”)에는 이런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아서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도 배신하고 싶었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예요” 이런 가슴 섬뜩해지는 뜻도 담겨 있는 말일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제자라는 작자들 중에도 이처럼 못 미더운 자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세요.

<기도> 엄위로우신 주님, 주님 앞에 저희는, 죽을 때까지, 미심쩍은 자들일 수 밖에 없습니다. 끝끝내 주님께로 기울어지지 못하고, 사탄의 편으로 기울어질 수 있는 소질을 가지고 사는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마음에 흔들림이 없는 굳센 믿음을 가지고, 주님의 사람으로 살도록, 성령님,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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