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데살로니가전서 4장 7-8절 :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 주신 것은, 더러움에 빠져 살게 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거룩함에 이르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경고를 저버리는 사람은, 사람을 저버리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에게 성령을 주시는 하나님을 저버리는 것입니다. (새번역)
힙포의 어거스틴의 어머니인 모니카(331-387)는 타가스테 지방 출신인 듯합니다. 그녀는 이교도인 파트리시우스라는 사람과 결혼하여 슬하에 세 자녀를 두었습니다. 맏아들이 어거스틴, 둘째 아들 나비기우스, 그리고 딸이 하나 있었습니다. 모니카에 관하여는 그의 아들 어거스틴의 참회록과 그 밖의 저작물들 속에 나타난 내용으로 미루어 알 수 있는 사실 밖에는 전하여 지는 것이 없습니다.
모니카는 정숙하고 신실한 기독교인으로서 항상 기도로 생활한 이였습니다. 그는 남편 파트리시우스의 회심을 위해 끈질기게 기도하였지만, 완강한 남편은 좀처럼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욱 아내를 괴롭게 할 뿐이었습니다.
그 모진 가정 내의 박해에도 불구하고 끊임없는 모니카의 20여 년에 걸친 기도가 이루어지는 날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371년, 남편은 아내의 모범적 가정생활로 인하여 깊은 감동을 받은 나머지, 마침내 아내와 함께 교회에 가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슬프게도 그 이듬해 남편은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모니카의 또 하나의 기도는 그의 아들 어거스틴을 위한 기도였습니다. 남편을 사별하던 해에 17세였던 어거스틴은 출세욕에 가득차서 집을 떠나 각지를 떠돌아 다니며 학업을 닦고 있었지만, 생활이 방탕하여, 동거하는 여인 문제로 모니카의 염려가 지극하였습니다.
그녀를 만난 어떤 주교는 “그토록 눈물로 아들을 위해 기도하는 어머니의 아들은 하나님께서 결코 버려두지 않으신다” 고 위로한 바도 있었습니다.
383년에 어거스틴은 이탈리아로 갔는데, 모니카도 따라갔습니다. 처음에는 로마에 있다가 후에 밀란으로 갔습니다. 거기서 모니카는암브로시우스 주교를 만나 그의 충실한 제자가 되었습니다.
밀라노에서 3년을 지내던 모니카는 이윽고 그의 아들의 회심의 계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방탕한 아들을 위해 기도하기를 16년 동안 하던 끝에 하나님의 응답을 받은 것입니다. 387년 4월 25일 아들 어거스틴은 암브로시우스 주교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 후, 지금껏 그를 미혹하던 마니교의 교리의 허위성을 가는 곳마다 설파하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성직자가 되기를 희망했던 것입니다. 모니카의 기쁨은 더할 나위 없이 컸습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 기쁨을 가지고 아들 어거스틴과 함께 고향 북아프리카를 향해 항해하던 도중 5월 4일에 오스티아라는 곳에 정박하고 있을 때, 별세하고 말았습니다.
아프리카로 가던 선박 속에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어머니를 간호하던 어거스틴에게 모니카는 영생의 신앙에 관하여 말해 주었습니다. 육신의 어머니로서만이 아니라, 영적인 어머니로서의 역할까지도 담당한 것입니다. 후일의 어거스틴의 신학에 어머니의 교훈들은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었습니다.
<기도> 사랑의 하나님, 저희에게 어머니를 주셔서 하나님의 사랑과 관용과 오래참음을 깨달을 수 있는 초석을 놓아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저희도 믿음의 어머니들의 신앙을 본받아 바른 신앙으로 살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