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디모데전서 4장 4, 13절 :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해집니다. … 내가 갈 때까지, 성경을 읽는 일과 권면하는 일과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십시오.” (새번역)
제가 군복무를 할 때에, 사랑하는 아버지께서 그 바쁘신 목회일정에도 최전방 대성산 입구까지 위문을 오신 적이 있었습니다. 갑자기 오셨고, 금방 떠나셨습니다. 그저 식당에서 저와 함께 갈비탕 하나 잡수시고는, 가셨습니다. 청주서 기차와 버스로 오셨기 때문에 당시로서는 힘든 길을 오신 것이었습니다.
저를 보시더니 군복이 땀에 젖어 있으므로, “장교도 뛰냐?” 물으셨습니다. 그때 한창 무슨 훈련을 준비하고 있었던 때여서 장교고 뭐고 없었습니다. 특히 저는 초급장교인 소위였으니까, 사병이나 다름없이 뛰어야 했습니다.
두어 시간 조용히 제 이야기를 들으시다가 가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제게 하신 말씀도 있었습니다. 모두 질문이었습니다. “주일예배는 어디서 보냐” 와 “성경 읽을 새는 있냐” 였습니다.
군부대와 민간인 동네 사이에 지은 최전방교회는 군목이 목회하는 교회였습니다. 거기서 예배를 드린다고 대답했을 것이고, “성경 읽을 시간 여유는 없다”고 대답했을 겁니다. 실제로 성경 읽을 시간은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읽을 열심이 없었던 거지요.
아버지의 관심은 아들이 군생활을 하면서, 성경 읽기와 기도 생활이 어떠한가를 아시고 싶으셨던 것이었습니다. 저를 위한 가장 핵심되는 질문을 하신 것인데, 저의 대답은 핵심을 떠난 대답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이제 와서 생각하면, 저를 붙들고 있던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것과 기도였다면, 그 오랜 세월을 방황하지 않았을 것을, 하고 후회하지만, 모두 흘러간 세월의 이야기입니다.
지금도 저를 감싸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일과 기도 밖에는 없다고 믿습니다. 적게든 많게든 날마다 말씀 안에서 위로와 격려를 받고, 말씀으로 삶의 지침을 받으며 사는 일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리고 ‘기도’는 하나님께 아뢰려는 기도보다, ‘하나님께서 나를 향하신 뜻이 무엇인가를 내가 듣는 시간’이 기도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영혼에 일깨우심을 주실 때까지 기다리다가, 하나님의 뜻을 일러 주시면 제가 순종의 결단을 바쳐 드리는 것이 기도의 시간입니다. 왜 이것을 진작 알지 못했을까, 후회됩니다. 이것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주님께서 본보이신 기도였는데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의 사랑하는 ‘영적인 아들’ 디모데를 향해서 부드러운 어조로 말씀하시듯 편지를 썼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의 말씀과 기도의 시간으로서 거룩하게 되어라, 곧 주님의 사람이 되어라”라고 권면하셨습니다.
<기도> 말씀으로 저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 오늘도 주시는 말씀을 기쁨으로 받으며 살게 하옵소서. 이로써 우리가 점점 더욱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들로 변화되고 성장하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