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마태복음 14장 5-11절 : 그래서 헤롯은 요한을 죽이려고 하였으나,민중이 두려워서 그렇게 하지 못하였다. 그것은, 그들이 요한을 예언자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침, 헤롯의 생일에 헤로디아의 딸이 손님들 앞에서 춤을 추어서, 헤롯을 즐겁게 해주었다. 그리하여 헤롯은 그 소녀에게, 청하는 것을 무엇이든지 주겠다고, 맹세로써 약속하였다. 소녀는 자기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말하였다.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서 이리로 가져다 주십시오.” 왕은 마음이 괴로웠지만, 이미 맹세를 하였고, 또 손님들이 보고 있는 앞이므로, 그렇게 해주라는 명령을 내리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사람을 보내서, 감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게 하였다. 그 머리를 쟁반에 담아서 가져다가 소녀에게 주니, 소녀는 그것을 자기 어머니에게 가져갔다. (새번역)
‘독사의 새끼는 독사’라는 말이 맞습니다. 또 독사의 남편도 독사입니다. 독사의 잔칫날, 의로운 하나님의 사람인 세례 요한이 목 베임을 당합니다. 잔칫날의 경사스러운 기념행사로, 의인의 목을 베어, 그들이 듣기 싫어하던 ‘의로운 소리 방송’ 요한의 숨을 아예 끊어 놓고 만 것입니다.
베어져 붉은 피가 뚝뚝 흐르는 요한의 얼굴을 본 헤롯과 헤로디아가 진정 마음의 평안을 찾았을까요? 그럴 수 없었을 것입니다. 끝까지 그들의 뇌리에서 평생 사라지지 않는 모습으로 눈 앞에 어른거렸을 것입니다.
서울은 ‘스올’(‘지옥’이라는 히브리 말)이라고 말한 분이 계십니다. 발음이 비슷합니다. 옛날부터 의인들이 피 흘린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사륙신이 그랬고, 광화문 앞, 지금 정부청사가 있는 곳이 그 옛날 많은 의인들의 목숨을 거두게 한 처형장이었다고 합니다.
4.19는 3.15부정선거를 고발하던 학생 김주열의 얼굴에 총류탄을 박아 바닷물에 가라앉힌 시신이 떠오른 것이 도화선이 되어 봉기한 사건이었고, 1979년 청와대 저격사건은, 반군부 시위였던 부마사태가 한창 극에 달했을 때에, “10만명 정도 죽일 셈 치고, 시위 같은 것 하나 못 잡나” 하며 기염을 토하던 한 군부 간상배의 오만이 10.26의 참극을 낳았던 것입니다.
어느 권력이나, 일단 정권을 잡게 되면, 비판의 소리를 듣기 싫어합니다. 그래서 모든 비판의 입을 막아 버립니다. 그것이 유일한 해결책인 줄 오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비판을 고마와할 줄 알아야 건실한 사회가 되고, 튼튼한 통치체제가 됩니다.
비판의 목소리를 싫어할 때, 모든 이들에게 참화를 가져 오게 됩니다. 여기서, 불의한 지도자의 멸망은 자기가 뿌린 씨를 자기가 거두는 것이지만, 의인의 죽음은 너무도 억울합니다. 하지만, 역사를 바로잡기 위하여 의인들은 희생양이 되곤 하는 것이 역사입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그들의 생애를 다 살지 못하고 믿음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칩니다. “이 사람들은 모두 믿음으로 말미암아 훌륭한 사람이라는 평판은 받았지만, 약속된 것을 받지는 못하였습니다. … 자기에 대한 죄인들의 이러한 반항을 참아내던 분을 생각하십시오. … 여러분은 죄와 맞서서 싸우지만, 아직 피를 흘리기까지 대항한 일은 없습니다.”(히11:39, 12:3상, 4) 고 히브리서 기자는 말합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믿음을 지키기 위하여 죽임을 당하는 일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일을 먼저 당하셨기 때문에, 비록 이런 일을 당하더라도 영원한 나라를 바라보면서, 잘 감당하라고 권유하며, 격려하십니다.
우리들의 생애에 이런 일을 당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당한다 하더라도 늠름하게 당하기를 항상 준비하고 사십시다. 오늘은 세례 요한의 목 베임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기도> 주 하나님, 하나님의 편에 서는 일이 항상 무사한 것 만은 아닌 것을 압니다. 때로는 목숨을 바쳐야 하는 일도 있는 것을 압니다. 많은 믿음의 선열들이 그랬던 것처럼 각오를 합니다. 그러나 감당 못할 만큼 어렵게 당하지는 않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