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곡을 기쁨의 춤으로 바꾸어 주시는 하나님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시편 30편 11-12절 : 주님께서는 내 통곡을 기쁨의 춤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나에게서 슬픔의 상복을 벗기시고, 기쁨의 나들이옷을 갈아입히셨기에 내 영혼이 잠잠할 수 없어서, 주님을 찬양하렵니다.(새번역)

사람이 살다 보면, 통곡을 할 때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을 때, 그리도 강렬하게 소망했던 일이 좌절되었을 때, 외롭게 위험에 빠져 있을 때, 육신이 병들어 심한 고통을 겪고 있을 때, 인간은 웁니다. 저도 몇 번 통곡의 울음을 울어 보았습니다.

아버지 돌아가시던 날, 어머니 돌아가시던 날 물론 남들처럼 저도 통곡을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큰 병원에 입원해서, 의사들도 어떻게 진료해야 할지 모른다는 판정을 했던 무렵, 서울시향에서 병원로비에 와서 음악회를 개최했는데, 오보 독주로 ‘미션’ 주제가를 연주할 때에, 그 음악에 기대고, 저는 한참을 울었다 습니다.

그 어떤 울음보다도, 하나님께서 저를 새 사람으로 서게 하시던 날, 제 집 방 안에서 아버지가 생전에 보시던 성경책을 펴 놓고, 회개하던 날의 울음이 저에게는 가장 잊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누구에게나 회개의 통곡의 날들이 있어야 하나님을 만납니다. 많이 깨닫고, 많이 깨지고, 또 많이 치유되는 시간이기 때문에, 회개의 통곡은 아름답습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울다가 웃으면 엉덩이에 … ’ 는 말이 있습니다. 어려서 많이 들었습니다. 어렸을 때, 제가 울면 한 시간 이상 울기 때문에, 울음을 그치게 하시려고, 제 할머니가 곁에 다가서시며 제 겨드랑이를 간지르며 하시던 말씀이었습니다.

엉덩이가 어떻게 되는 것인지는 제가 상상이 잘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울 바에는 힘껏 울어서 한풀이를 하고, 그리고 어서 밝은 마음과 밝은 미소로 살아 보라는 옛 사람들의 지혜에서 나온 말인 듯합니다.

예루살렘 ‘통곡의 벽’ 앞에서 7, 8 명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덩실 덩실 춤을 추며 돌아가는 동영상을 본 일이 있습니다. 잠작컨대, 그들이 한때 통곡하며 간구하던 기도가 이루어져서, 다시 통곡의 벽에 돌아와, 하나님께 덩실 덩실 함께 춤을 추며 감사 올리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들에게 큰 ‘통곡의 기도’ 제목이 있다면, 첫째로는 C19를 어서 속히 거두어 주시기 위해서 빌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침체된 세계와 한국사회의 산업활동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 주십사고 빌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어떤 대선 후보를 지지하든, 내년 봄에 이루어질 선거가, 진정 우리들의 ‘자유 민주주의 공화국’ 다운 선거가 이루어져, 우리나라가 행복한 나라가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기원입니다.

하지만 더 간절한 우리들의 기원은, 우리들의 사랑하는 사람들과, 세상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집으로 돌아와, 하나님과 화해하는 날을 염원하는 기도일 것입니다.

<기도> 주 하나님, 저희의 구원자가 되시나이다. 저희의 간구함을 이루어 주소서. 코로나 상황을 통해서 저희가 많이 회개하게 하시고, 대선을 통해서 저희가 진정 나라 사랑하는 국민들이 되게 하시며, 특별히 만민이 구원 받도록 저희가 간구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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