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제자’들의 내면세계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마태복음 8장 18-22절 : 예수께서, 무리가 자기 옆에 둘러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제자들에게 건너편으로 가자고 말씀하셨다. 율법학자 한 사람이 다가와서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나는 선생님이 가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가겠습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을 나는 새도 보금자리가 있으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 말하였다. “주님, 내가 먼저 가서,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도록 허락하여 주십시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따라오너라. 죽은 사람의 장례는 죽은 사람들이 치르게 두어라.” (새번역)

이 본문을 보면, 주님의 제자가 되려는 사람은 각각 두 가지 조항에 동의를 해야 합니다. 이 각서를 제출하지 않고는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각서: 1. 먹고 사는 문제는 조금도 염려하지 않겠습니다. 2. 무한대의 책임을 물으실 테지만, 불평하지 않겠습니다. 제출자 – 이요셉 >

이런 각서를 쓰고 주님의 제자가 된 사람에게 청혼을 했다가는 같은 운명이 되기 때문에, 결혼 후에 후회를 하는 경우가 많이 발생하게 마련입니다.

저는 1975년도까지 어떤 직장을 다니다가, 그해 여름부터 왕초보 전도사로 교회 일을 시작했습니다. 직장을 다니고 있을 때에는 당시의 시세로도 낮은 봉급인 17만원을 월급으로 받았습니다. 제 아내는 그걸 가지고도 살림을 잘 해 보겠다고 가계부를 썼습니다.

그런데 제가 교회 일을 시작하면서부터는 ‘월급’이랄 것도 없고, ‘사례비’로 매달 1만 7천원을 받았습니다. 10분의 일로 수입이 삭감된 것이라고 봐야 하나요? 그것으로 저희 부부, 그리고 두 자녀가 살아야 했습니다. 물론 교회 곁에 사택이 있어서, 집 문제는 덜었습니다.

서울 다녀올 일이라도 생기면, 귀가 할 때, 아가들 과자까지 사 들고 오면, 그 돈은 다 날아가 버리고 말곤 했습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그 교회에서 지냈는지는 기적과도 같습니다. 하여튼 굶지 않고 살았습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까마귀’들을 시켜서 먹을 것을 날라다 주니까 살았습니다.

어떻든 저희 결혼생활 53년 중, 가장 돈걱정 안한 때가 그때였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쓰던 가계부를 아예 치워 버렸으니까요.

첫번째 각서내용은 그런대로 지키기가 수월했다고 해야 할까요? 하지만 두번째 각서내용이 문제였습니다. 책임이 역시 무한대였기 때문입니다. 왜 네가 사는 동네 사람, 한 사람도 전도 못했느냐, 이 채근을 하시는 예수님 앞에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의식주에 대해서 아무런 대책을 세워 주시지 않는 ‘보스’를 위하여, 책임은 무한대로 지고 있는 사람이, 평소 의기 충천해 있을 리가 어디 있겠으며, 행색은 또 어떻겠습니까? 축 처져서, 죽지 못해 사는 사람이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이니, 기 죽지 말라”고 하니까, 속은 빈 강정인데, 겉으로는 육군사관학교 새로 나온 초급장교처럼 빠릿빠릿하게 살아야 합니다. 이 아픈 속을 누가 알겠습니까? ‘내가 주님께 써 바친 각서’이니, 누구에게 하소연할 수도 없습니다.

목사인 제 아버지가 그래서, 평양서 목사 일을 하실 때에는, 집안에 가내공장까지 차려놓고 일을 하셨고, 부산서는 부두노동까지 밤새 나가서 일을 하셨는데, 그때 알아 봤어야 하는데, 그만 대를 물리고 ‘주님의 제자’가 되겠다고 지금껏 목사가 되어 살고 있고, 제 자식도 이 ‘주님의 제자’ 일을 일본에까지 가서 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생활보호’ 대상자 수준으로 살면서.. 이것이 신비입니다.

머리 둘 곳이 없는 사람을 우리는 ‘노숙자’라고 부릅니다. 아버지 장례도 안 치르는 사람을 우리는 ‘후레자식’이라고 부릅니다. 노숙자면서 후레자식이 될 수 밖에 없는 ‘주님의 제자’의 자긍심은 뭡니까? 복음을 위하여 노숙자가 되고, 복음을 위하여 후레자식이 되는 것이 우리들의 자긍심이지요. 이것으로 기뻐하고, 만족하며 사는 것이지요. 이것이 불만이었다면, 진작에 각서를 쓰지 말았어야지요.

<기도> 주 하나님, 아브라함, 모세, 엘리야, 베드로, 바울 이들 모두가 나그네로 살았으니, 저희의 가난을 불평하지 않습니다. 무한대 책임을 물으시면 그저 묵묵히 책임감을 느끼며 수긍하겠습니다.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제자의 영광 만은 제하지 말아 주옵소서.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끝까지 충성하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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