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전도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마가복음 9장 30-37절 : 그들은 가버나움으로 갔다. 예수께서 집 안에 계실 때에,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너희가 길에서 무슨 일로 다투었느냐?” 제자들은 잠잠하였다. 그들은 길에서,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 하는 것으로 서로 다투었던 것이다. “예수께서 앉으신 다음에, 열두 제자를 불러 놓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그는 모든 사람의 꼴찌가 되어서 모든 사람을 섬겨야 한다.”

그리고 어린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 세우신 다음에, 그를 껴안아 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이들 가운데 하나를 영접하면, 그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는 사람은, 나를 영접하는 것보다, 나를 보내신 분을 영접하는 것이다.” (새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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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살고 있는 대부분의 시간은, 머리 속에서 자신을 남과 비교하는 일로 보낸다고 심리학자들은 말합니다. ‘내가 남보다 더 돈이 많으냐’, ‘더 지식이 많으냐’, ‘더 기술이 많으냐’, ‘자식들이 더 출세했느냐’, ‘더 잘 생겼느냐’, ‘더 좋은 집에 사느냐’, ‘더 좋은 차를 타느냐’, ‘더 좋은 것을 먹느냐’, ‘더 좋은 옷을 입었느냐’, 이런 것을 비교하느라고 온 종일 머리가 바쁘다는 겁니다.

이것을 ‘컴플렉스’(복합감정)라고 하는데, 어떤 때는 ‘열등감’으로 또 어떤 때에는 ‘우월감’으로, 하루 종일 감정의 기복을 오르내리면서 기분이 좋았다 나빴다 하는 병을 대부분 앓고 있다고 합니다.

평행복음인 마태복음 18장 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이 어린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하늘나라에서는 가장 큰 사람이다” 하셨지만, 제가 어렸을 적에 이 본문을 읽거나 들으면서, 어린이도 자기 우월감에 사로잡혀 살기는 마찬가지인데 하면서 의아해 한 적이 있었습니다.

누구나 앓는 이 교만심의 병에서 놓여 나는 방법은, 예수님 앞에서 철저히 죄인됨을 깨닫고, 스스로 낮아져, 주님께 투항할 때에만 가능할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또 한 가지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어린이를 영접하라’(37절)는 말씀입니다. 자기 집 아이는 얼마든지 본능적으로 영접합니다. 잘 났다고, 예쁘다고, 똑똑하다고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온갖 좋은 것으로 입히고, 좋은 것으로 먹입니다.

그러나 남의 아이들은 시끄러워하고, 어수선하다 하고, 골치 아프다 하면서, 경계를 합니다. 모두 멀리 사라지라는 것입니다. 심지어 자기 자식인데도 그러는 사람들이 요사이는 있는 것을 봅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어느 집 아이건 어린이를 영접하라고 하셨습니다. 아마도 주님의 이 말씀은 교회주일학교와 어린이전도협회 만이 귀를 기울이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물질주의 풍조에 사로잡힌 실리주의 때문에, 교회도 교회 경영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고 ‘지출요인’으로만 작용하는 주일학교와 어린이전도에는 등한한 것이, 많은 교회들의 현상인 것 같습니다.

어린이를 영접하라고 하신 주님의 이 말씀은 바로 현대교회의 이런 현상을 두고 하신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출요인’인 어린이를 등한시했다가는, 교회의 내일은 없게 된다고 경계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심지어, 가정에서까지, 이 지출요인을 없애기 위해서 아이를 가지지 않는 풍조의 세태를 보고 있는 요즈음, 교회마저 그 풍조를 따르다가는 진정 교회는 끝나고 마는 것입니다.

어린이는 우리들에게 내일의 소망을 약속하는 하나님의 선물들입니다. 귀하게 여깁시다. 열의를 다해 양육하십시다.

<기도> 생명의 하나님, 각 가정에 주신 어린이들은 그 가정을 위한 선물이며, 온 나라, 온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선물임을 고백합니다. 귀하게 여기고, 사랑하며, 양육함으로, 사랑하는 우리 교회가 내일이 있는 교회가 되고, 세계가 내일이 있는 세계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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