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마태복음 5장 39절하 : “누가 네 오른쪽 뺨을 치거든, 왼쪽 뺨마저 돌려 대어라.” (새번역)
<제1화> 레오나드 드리피스 목사의 ‘십자가 밑에서’라는 설교집에는 필라델피아에서 발생한 한국 학생 피살 사건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1958년 4월 25일 교환학생으로 펜실베니아대학에 유학 중이던 한국인 학생이 편지를 부치러 우체국을 가다가, 불량배에게 몰매를 맞고 사망한 사건이었습니다.
살인자는 체포되었고, 대학가의 높은 여론과 시민의 분노로 그에게 사형이 언도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피살자의 한국인 부모가 담당 판사에게 탄원서를 보냈습니다. 자기 자식을 죽인 살인자의 생명을 구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를 살려 주면, 그의 재활을 위해 재정적으로 책임 지겠다고 하면서.. 이어서 말하기를, 탄원을 하는 이유는, 우리 인간들을 멸망의 길에서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희생을 조금이라도 실천하기 위함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제2화> 오래 전에 미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한 살인범이 어떤 재판에서 사형언도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살인범의 형이 되는 사람은 공직에 있는 동안에 많은 공로를 세워서 잘 알려진 사람이었습니다. 이 형은 주지사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자기 동생을 사면해 주기를 간청했습니다.
주지사는 동생을 위하여 탄원하는 형의, 잊혀질 수 없는 공로를 참작하여 그의 동생의 죄를 사면해 주었습니다. 양복 안주머니에 주지사의 사면장을 받아 넣은 형은, 곧바로 감방에 갇혀 있는 동생을 찾아갔습니다. 동생을 만나 본 형은 물었습니다. “만약 네가 사면이 되어 살아서 나간다면 너는 무엇을 하겠냐?” 고.
그러자 동생은 얼굴을 찡그리더니 즉시 대답을 했습니다. “만약에 내가 살아서 감방을 나간다면, 첫째로, 나에게 사형언도를 내린 판사를 찾아가, 그 놈을 죽이는 일이고, 그 다음에는 내 재판에서 증인으로 섰던 놈을 찾아서 그 놈을 쏘아 죽여야지.” 라고 했습니다.
형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 나왔습니다. 형무소 문을 나서는 형의 양복 안주머니에는 주지사로부터 받은 사면장이 그대로 들어 있었습니다.
<제3화> (함석헌의 ‘너 자신을 혁명하라’ 에서) 나는 될수록 미워하지 않으려고 참는다. 나는 정말로 노력한다. 말 한 마디도 절대로 감정 내키는 대로 하지 않는다. 내 마음의 행길 위에도 ‘일단 정지’의 패쪽을 세웠다. 미워해서는 안 되지, 반성하고 또 반성한다.
“하나님, 제발 미운 마음으로 살지 않게 해 주소서.” 하고 기도하고 기도한다. 부끄러운 고백이다. 내 딴에는 이제라도 바른 길에 들어섰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에서 이렇게 기도하며 산다.
<제4화> 유명한 미술가 루소의 판화에 이런 제목의 판화가 한 점 있다고 합니다. 그 판화의 제목은 ‘향나무는 자기를 찍는 도끼날에도 향을 묻힌다’ 입니다. 괴롭히고, 아픔을 주고, 상처를 주는 도끼날에도 독을 묻혀 주지 않고, 오히려 향을 묻혀 주는 향나무..
우리가 살아가는 데에는 넘어야 할 산과 건너야 할 강이 많습니다. 그것들이 우리에게 좌절을 주고, 아픔을 주고, 때론 분노와 절망을 일으킬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를 찍는 도끼날에도 향을 묻혀 주는 향나무처럼’ 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제5화> 1920년 김린서 장로가 독립운동을 하다가 감옥에 갇혔습니다. 감방에서 또 한 사람의 독립운동가를 만났습니다. 윤병구 선생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비폭력과 무저항주의에 대해 평소 비난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김장로를 만나게 되자, 대뜸 한 마디 했습니다:
“성경에는 누구든지 네 오른뺨을 치면 왼뺨을 돌려대라 했다지요? 그 따위로 해 갖고 어떻게 독립운동을 하겠소? 폭력을 쓰는 자는 폭력으로, 무력을 쓰는 자는 무력으로 대항해도 될까 말까인데?” 그때에 김린서 장로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뺨을 치는 자에게 마주 대하여 치는 것은 혈기의 용맹이요, 소인배의 용맹이요, 필부의 용기일 뿐입니다. 또, 한 사람 밖에 더 대적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오른 뺨을 치는 자에게 왼뺨을 돌려대는 것은 거룩한 용기요, 만인을 감복하게 하는 큰 용기요, 영적 용기입니다.” 이 말에 감복하여, 윤병구 선생은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제6화> 성경 시편에는 수많은 ‘복수를 기원하는 시’들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께 복수를 간구할 수가 있을까요? 그러나 시편에서 원수를 갚아 달라는 기원은, 인간적인 솔직한 감정을 하나님께 토로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는 모든 것을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복수를 기원하는 것은, 인간의 솔직한 감정이요, 이것이 우리들의 기도의 종점이 될 수는 없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원수를 포함한 모든 인류의 죄를 사하신, 예수님의 용서가 우리들의 기도의 종점입니다.
<기도> 용서의 왕으로 십자가에 오르신 주 예수님, 저희의 오른 뺨을 치는 자에게 왼뺨도 돌려댈 믿음을 가지고 날마다 살게 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