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 목숨 바쳐 이룰 일은..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요한복음 12장 24절 :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서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열매를 많이 맺는다.” (새번역)

제가 어려서 인민(초등)학교를 입학하던 무렵, 아버지는 평양의 감리교 성화신학교 교수로 재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신학교 뜰에서 자라났습니다. 신학교 재학생 450여 명이 교내에서 반공데모를 했습니다.

각 교실 전면에 붙여 놓았던 김일성과 스탈린의 사진을 모두 떼어다가 운동장에 쌓아 놓고 불살랐습니다. 이 일로 신학교는 폐교처분을 당하고, 신학교 교장이었던 배덕영 목사는 어느 날 저녁 내무서(경찰서)에 연행되었습니다.

그 후로 신학교 관계자들은 물론 가족까지 아무도 배 목사의 얼굴을 다시 보지 못했습니다. 어떤 지방학생이 어느 기차역에서 배 목사를 얼핏 보았다고 하면서, 포승으로 결박되어서, 탄광촌인 아오지행 기차를 타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배 목사가 어떤 고생을 하다가 돌아가셨는지는 우리들의 무슨 상상력으로도 다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이 분이 제 생애에 만났던 분들 가운데 맨 처음 순교자 반열에 오른 분이십니다.

부산 피난 시절에 제가 다녔던 교회는 대청동에 있던 ‘남부교회’였습니다. 대청동에 있으면 ‘중부교회’라는 이름이 적절할 터인데 왜 ‘남부교회’였는가, 그 내력을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교회를 설립한 분들의 대부분이, 전쟁 전에 함경도 원산의 ‘남부교회’를 다니시던 분들이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 원산남부교회를 담임했던 고 조희렴 목사께서 가족을 다 남으로 피난을 보내시고, 미처 피난 못한 교우들과 함께 교회를 지키신다고 원산에 남아 계시다가, 인민군에게 체포되어 총살형을 당했습니다. 이 사실을, 공산군이 원산에 진주한 후에 월남한, 한 교우에 의해서 모두 알게 되었습니다.

남부교회는 해마다 정한 주일에, 고인을 기념하는 추모예배를 드리곤 했습니다. 그 예배에서 교우들은 고인을 추모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교회는 순교의 피로 지켜 지는 것이구나 하는 사실을 저는 어렸을 적부터 배웠습니다.

제 첫 직장은 한 기독교언론사였습니다. 거기 재직하던 동안, 같은 계열의 직장에 재직하던 분 하나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 분이 나중에 한국종교문제연구소 소장이 된 탁명환 씨였습니다. 저는 1967년 탁 소장과 함께, 관악 청계산 골짜기에 자리잡고 있었던 신흥종단 ‘장막성전’을 취재하기 위해 동행한 일도 있었습니다.

결국 그 분은 사이비종단의 비리를 들추어 분쇄하는 일에 일생을 바치기로 작정했고, 30여 년간 활동하던 끝에, 1994년 그의 집 앞에서 괴한에게 칼로 목이 찔리우고, 쇠뭉치로 머리를 구타 당해 그 자리에서 숨졌습니다. 그때 그의 나이가 57세였습니다. 나중에 그 폭도는 체포되었는데, 개신교 신흥종단인 ‘대성교회’의 광신자였습니다.

신흥종단이라는 단체들은 대부분, 종교를 빙자하고, 신앙의 자유를 구실로 해서, 무지몽매한 우중을 끌고 다니며 농락하는 자들입니다. 기성 교회들의 약점을 파고 들어, 그들의 발판을 마련하고, 특별히 ‘임박한 종말’이나, ‘신적 존재의 강림’을 선전하여, 추종자들에게 재산을 갈취하는 자들입니다.

이 사실을 드러내는 일이야말로 대단히 위험한 일이지만 필요한 일입니다. 탁 소장에게는 국가의 보안 조치가 있어야 했습니다. 그래야 그가 안전하게 활동할 수 있었는데, 너무도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한국인 순교자를 기념하는 날을 맞이하여, 이 땅에서 복음진리를 전하다가 순교 당하신 분들을 기억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종교현상의 진실을 밝히다가 이로 인해서 죽음을 당하신 분들도 기억합니다.

경기도 용인에 ‘한국기독교순교자기념관’을 세운 이들이, 순교자의 명단에 탁명환 소장의 이름을 올려서 기념하게 된 것은, 진실로 마땅하고 다행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기도> 주 하나님, 복음진리와 주님의 교회를 수호하기 위해서 목숨을 바친 이들이 이제 하늘나라에서 안식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피 흘려 지킨 주님의 교회를, 저희가 생명을 다하여 지키도록, 성령님, 힘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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