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느헤미야 8장 9, 11-12절 : “백성은 율법의 말씀을 들으면서, 모두 울었다. 그래서 총독 느헤미야와 학자 에스라 제사장과,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이, 이 날은 주 하나님의 거룩한 날이니, 슬퍼하지도 말고 울지도 말라고 모든 백성을 타일렀다. … 레위 사람들도 모든 백성을 달래면서, 오늘은 거룩한 날이니, 조용히 하고, 슬퍼하지 말라고 타일렀다. 모든 백성은 배운 바를 밝히 깨달았으므로, 돌아가서 먹고 마시며, 없는 사람들에게는 먹을 것을 나누어 주면서, 크게 기뻐하였다.” (새번역)
저는 목사 아들로 교회 뜰에서 자라난, 소위 ‘모태신자’ 가운데도 진골이었습니다. 더구나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신학교에 들어가서 4년을 공부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때 제가 마음이 교회를 떠난 적이 있었습니다. 한참동안 방황하던 끝에 다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제가 돌아오게 된 것은, 성경 말씀으로 인해서였습니다.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항상 품에 품고 다니시던 성경책을, 방 한 구석에 쌓아놓은 책 무더기 틈에서 꺼내서 읽고 있을 때, 저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었고, 제가 얼마나 하나님 앞에 못되어 먹은 인간인지를 깨닫고 회개했습니다. 저는 그날 집에서 혼자 깊은 울음을 울었습니다.
그 때 읽은 책이 구약성경의 창세기로부터 시작해서 출애굽기를 지나 레위기를 읽을 때였습니다. 그 고리타분하게 느껴졌던 레위기법전이, 제 마음에 하나도 지루하지 않고, 시편 말씀(시119:103)대로 꿀처럼 달콤한 권유의 말씀으로 들려 왔습니다.
특별히 레위기를 읽다가 회심을 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고 물으신다면, 레위기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자상하신 사랑을 깨달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자상한 사랑이란, 인간이 행복하게 사는 길은 하나님의 법 테두리 안에 사는 것 밖에는 행복의 길이 없다는 것을 레위기를 읽으며 절실히 깨달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서두에 보면, 느헤미야 시대에도 유대인들이 성경 말씀을 들으며 울었다고 했습니다. 인쇄술이 전혀 없었던 시대였으므로, 곳곳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이, 그날 모두 예루살렘 성문 가운데 하나인 ‘수문’ 어귀에 모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모인 무리가 너무 많았기 때문에, 잘 듣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레위인들이 회중 속에 조용히 왔다 갔다 하면서, 미처 알아듣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개별적으로 추가해설을 해 주어 돕기도 했습니다.
두루마리 성경책을 들고 읽던 에스라가 감격하여, “주 하나님을 찬양하라” 하면, 일동은 두 손을 높이 쳐들었다가, 땅에 엎드리며 “아멘, 아멘” 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는 마침내 통곡이 터져 나왔습니다. 레위인들이 회중 속을 다니면서, 무리를 진정시키려 했지만 그들의 통곡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때 구약의 어느 책을 읽었는지는 정확하게 설명되지 않았지만, ‘율법책’(8:2)이라고 했으니, 모세 오경(창, 출, 레, 민, 신) 가운데 어느 책이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분위기로 보아서, 신명기가 아니었을까 추정합니다.
이것은 요시야왕 때에도 같은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열왕기하 22장) 그때에, 요시야왕은 자신과 온 백성이 하나님을 떠나 살았던 것을 통절하게 뉘우치며 자기 옷을 찢었고, 신명기 법전을 들을 때에 사람들이 대성통곡을 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 감격하십니까? 맨날 울며 감격할 수야 없겠지만, 여러분의 생애에 말씀 앞에 거꾸러져 감격하고 감사의 눈물을 흘리는 날이 얼마나 있었습니까?
그 감격의 여파 속에서 우리들의 예배다운 삶이 날마다 이어져 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도> 고마우신 하나님, 죄 속에 헤매던 인간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시 깨우쳐서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저희가 하나님의 은혜 안에 거하며 살아가게 인도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