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냇가에 심은 나무’ 처럼

시편 1편 1-3절 :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며, 오로지 주님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밤낮으로 율법을 묵상하는 사람이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함 같으니, 하는 일마다 잘 될 것이다.” (새번역)

제 집은 의정부 시내 사패산 올라가는 길목에 있습니다. 태조 이성계가 한때 머물렀다는 회룡사 곁으로 흘러내려 오는 큰 계곡이 있는데, 그 쪽으로 저녁마다 산책을 합니다. 물가에는 약 5백년 가까이 된 회화나무가 이정표처럼 서 있습니다.

만약 나무 족보를 기록할 때, 그 나무를 심은 해를 기록했다면, 이 나무의 정확한 수령을 알 수 있었겠지요.

사람들이 추정하기로는 450 살은 됐을 것이라고 하니까, 아마도 이성계가 이 지방에 머물던 시절(1400년경?)이나, 훈민정음이 반포되던 1446년에는 이 나무가 거기 없었을 테지만, 임진왜란(1592년) 때에는 분명히 그곳에서 자라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 나무를 바라볼 때마다, 저는 시편 1편을 생각합니다. “밤낮으로 율법을 묵상하는 사람”을 “시냇가에 심기운 나무” 에 비긴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정말, 성경말씀대로, 냇가에 심어진 이 나무는 항상 늠름하게 서 있습니다. 뿌리는 흙에 묻혀 보이지 않지만, 아마도 시냇물 쪽으로 상당 분량의 뿌리가 뻗어 있을 것이 분명합니다. 나뭇가지도 대부분 시냇물 쪽으로 향하여 뻗어 있는 것을 보면 그렇게 짐작됩니다.

사철 마르지 않는 맑은 시냇물을 마시며 사는 이 나무야 말로 얼마나 복받은 나무입니까? 옛 시편 기자는 이런 나무를 바라보며, 하나님의 말씀을 종일 마음 속에 머금고 살아가는 사람의 복된 삶을 읊었던 것입니다.

독일의 ‘성서공동연구’ 학습방법을 제창한 한스 베버라는 분이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성경 공부의 방법은 세 가지가 있다. 머리로 하는 공부가 있고, 마음으로 하는 공부가 있으며, 그리고 몸으로 하는 공부가 있다” 고 했습니다. 그가 말하기를, 머리로도 마음으로도 공부하고, 몸으로 실천하는 공부가 진정한 성경공부라고 했습니다.

저는, 제가 머리로 성경을 공부하는 일보다 제 마음으로 공부하는 일이 더 비중이 커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또 마음으로만 아니고, 제 몸이 말씀을 실천하는 공부를 하고 싶습니다. 시편 기자가 ‘말씀을 묵상하며, 복된 사람이 된다’ 는 풍성한 차원에 이르기를 바랍니다.

하루에 한 구절을 묵상해도, 그것을 마음 속으로 깊이 느끼면서, 또 몸으로 그 말씀을 실천하며 사는 사람을 두고, “복된 삶을 사는 사람” 이라고 칭찬했던 것입니다.

이런 무게를 지닌 시이기 때문에, 시편 150편을 한 데 묶던 그 옛날 어떤 성경편집자가 이 ‘시냇가에 심은 나무’ 시를 제1편 ‘대표시’ 로 앞세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성경 책을 펼칠 때마다 이렇게 기도합니다:

<기도> “지혜와 통찰의 하나님, 성령을 통하여 사람들을 감화하셔서, 이렇게 기록으로 남겨 주신 성경말씀을, 제가 무슨 능력으로 한 구절인들 깨달을 수가 있겠습니까? 주 성령님이시여, 제가 읽는 말씀들을 밝히 깨달아 살 수 있도록, 한 걸음씩 저를 인도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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