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구원 받는다’는 뜻은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로마서 1장 16-17절 : “나는 그 복음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습니다. 복음은 먼저 유다인들에게, 그리고 이방인들에게까지, 믿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구원을 가져다 주는 하느님의능력입니다. 복음은 하느님께서 인간을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 주시는 길을 보여 주십니다. 인간은 오직 믿음을 통해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됩니다. 성서에도 ‘믿음을 통해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된 사람은 살 것이라’ 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공동번역)

갑이라는 사람과 을이라는 사람의 관계가 좋지 않다고 하면, 서로 이해관계가 부딪쳐 다툼이 생긴 관계를 두고 하는 말일 것입니다. 이해관계가 아니더라도, 서로의 인생 사는 목표가 달라서, 결과적으로 서로를 해치는 일이 된다면, 그 두 사람은 언젠가 격돌하고 말 것입니다.

가령 형과 동생이 하나는 여당에 들어가 있고, 하나는 야당에 들어가 있다면, 지금까지는 사랑하는 형제였을지라도, 서로 싸울 운명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과 인간이 올바른 관계에 있다는 것은, 같은 마음을 가지고, 같은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다는 뜻입니다. 만약 하느님과 인간이 서로 다른 마음을 가지고 다른 말을 하고 있다면 어느 편에서 고쳐야 하겠습니까? 인간 편에서 고치지 않고서는 다른 대책이 없습니다.

‘믿음’이라는 말은 힘든 말이 아닙니다. 인간이 하느님과 같은 생각을 하고, 하느님의 말씀대로 인간이 말을 하고 있을 때, 그 사람을 일컬어, ‘믿음의 사람’ 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열 두 제자 중 하나인, 가룟 유다가 예수님과는 다른 생각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배반하는 일까지 저지릅니다. 이렇게 서로 생각이 다르다는 것은 인생살이에 있어서도 큰 일을 저지를 소지가 있습니다.

인간을 말 잘 듣는 꼭둑각시로 창조하지 않으시고, 인격을 지니게 창조하신 하느님께서는, 인간 스스로의 결정으로 하느님과 인격적인 사귐을 가지고 살도록 창조하셨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자유’ 라고 말합니다. 인간에게 자유를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자유를 가지고 하느님을 배반하는 일을 했기 때문에, 하느님의 ‘큰 가정’은 파탄이 나게 되었습니다. 인간을 배반의 길에서 돌아서도록 하는 일도, 하느님께서는 억지부림으로 하지 않으셨습니다. 인간의 자의로 배반의 길에서 돌아서게 하셨습니다.

그 계기를 마련하신 것이, 하느님이 인간이 되셔서, 십자가를 지시고, 당신의 사랑을 보여 주신 일이었습니다. 십자가 위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느님의 사랑, 하느님의 계획, 하느님의 끈질기신 믿음을 인간이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믿음의 사람들은 돌이켜 하느님과 새로운 상호신뢰의 관계를 맺게 되었습니다.

변치 않을 상호신뢰의 관계를 성경은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하느님은 성실하신 분, 곧 ‘믿음직스러우신 분’이기 때문에 우리가 믿습니다. 하느님도 인간이 믿음직스럽기를 바라십니다. 인간이 믿음직스럽게 되기까지 하느님께서 집념을 가지고 기다리십니다.

하느님은 저, ‘이요셉’을 믿음직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큰 수고를 하셨는지, 저는 압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느님의 믿음 때문에 인간은 구원을 받는다’고도 말할 수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마음 속에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한 사람이 있었다면,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다가, 예루살렘 성문 밖으로 끌려 나가 바울과 그의 동료들의 돌팔매에 죽어간 스테반의 기억이었습니다. 바울이 회심한 후,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가 되어 살면서는, 날마다 스테반의 얼굴이 머리에 떠올랐을 것입니다. 그때마다, 장차 하늘나라에서 만날 스테반을 생각하면서, 소망에 부풀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상상을 해 봅시다. 나중에 바울도 로마에서, 오늘의 바티칸 성당이 지어진 자리에서 순교당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주님의 사도, 바울이, 복음전파를 위해 한껏 일하다가 하늘나라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은 스테반이 두 팔을 벌리며 달려와 바울을 끌어안는 장면을 상상해 보십시오. 아마, 하늘나라의 그 누구의 만남보다도 극적인 장면이었을 것입니다.

믿음의 승리는 이렇게 하늘나라에서 모두 얼싸안는 모습으로 거대한 휘날레를 장식할 것입니다. 창조주 하느님께서는 이윽고 창조의 세계를 바라보시며 영원한 기쁨 속에 믿음의 승리를 자축하실 것입니다.

<기도> 믿음의 하느님, 하느님의 믿음이 큰 영광을 받게 되시기를 빕니다. 저희 인류의 배신의 역사는 끝이 나고, 하느님의 믿음의 나라, 사랑의 나라가 영원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