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육신의 고향은 ‘여기’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마태복음 13장 54-58절 : 54)예수께서 자기 고향에 가셔서, 회당에서 사람들을 가르치셨다. 사람들은 놀라서 말하였다. “이 사람이 어디에서 이런 지혜와 그 놀라운 능력을 얻었을까? 55)이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그의 어머니는 마리아라고 하는 분이 아닌가? 그의 아우들은 야고보와 요셉과 시몬과 유다가 아닌가? 56)또 그의 누이들은 모두 우리와 같이 살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이 사람이 이 모든 것을 어디에서 얻었을까?”

57)그래서 그들은 예수를 달갑지 않게 여겼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예언자는 자기 고향과 자기집 밖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는 법이 없다.” 58)예수께서는 그들의 믿지 않음 때문에, 거기서는 기적을 많이 행하지 않으셨다. (새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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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함경도 어대진에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제게 어대진 기억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곳 저곳에서 교회 일을 했던 아버지와 더불어, 특별히 전쟁을 겪는 동안에, 전국을 배회하게 되었습니다. 회령, 평양, 서귀포, 부산을 거쳐, 서울에 와서 수십 년을 살았지만, 서울 본토사람이 저를 보고 서울사람이라고 하겠습니까?

그래서 사람들이 저에게 고향이 어디냐고 물을 때면, 저는 당황합니다. 그렇다고 ‘삼천리 반도가 내 고향’ 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대답을 했다가는, 무슨 대단한 애국지사 행세 한다고 여겨질 거고요. 아마도 ‘실향민’ 이라 하는 것이 오히려 나을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랜만에 고향 나사렛 마을을 찾아 가셨습니다. 정든 고향에 가면 반가운 친구들이 맞아 주는 것이 통례입니다마는, 도리어 반대였습니다. 사람들이 냉대를 지나, 아예 원수시했습니다.

예수님이 회당에서 말씀을 하시는 품이, 마치 임금님의 등극하는 예식과도 같아 보였습니다. 만약 이것이 분봉왕 헤롯이나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알려지면, 고향 사람들은 모두 반역으로 몰려 떼죽음을 당할런지도 모른다며, 예수님을 죽이려 했습니다. (눅4:28-29)

고향에 돌아와 이런 욕을 당하신 예수님은, 고향에서 오히려 메시아 사역을 하실 수가 없음을 한탄하셨습니다.

실향민인 저는 고향이라고 찾아갈 데가 없으니, 냉대를 받을 곳마저 없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명절이 되어, 사람들이 저마다 고향을 찾는 때가 되면, 마음 한 구석에 부러운 생각이 드는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오늘의 말씀에서, 저는 저의 ‘고향’에서 벌써 살고 있는 사람인 것을 깨닫습니다. 제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구원의 은혜를 경험하게 도와 주신 ‘영적인 족장(patriarch) 분들’을 만났던 곳이 바로 내 고향이요, 제게 복음전도자의 사명을 일깨워 주신 분들을 만났고, 이 일을 동역해 주신 분들이 사시는, 바로 ‘여기’가 제 고향인 것입니다.

그 장소가 서울이었든, 부산이었든, 한반도 전체가 하루 생활권 속에 들어온 지금, 제가 살아서 숨 쉬는 곳이 모두 제 고향이 된 것이 아닙니까? 제 고향은 달리 있는 것이 아니라, 제 믿음의 동지, 복음의 동지들이 더불어 살고 있는 곳이 제 고향인 것을 깨닫습니다.

<기도> 주 하나님, 복음 안에서 한 형제 자매된 이웃들과 더불어 정답게 고향을 이루어 살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 드립니다. 이곳에서 하나님 나라 확장과 복음의 완성을 위하여 일하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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