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누가복음 18장 35-43절 : 35)여리고에 가까이 가셨을 때에 한 맹인이 길 가에 앉아 구걸하다가 36)무리가 지나감을 듣고 이 무슨 일이냐고 물은대 37)그들이 나사렛 예수께서 지나가신다 하니 38)맹인이 외쳐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39)앞서 가는 자들이 그를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40)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명하여 데려오라 하셨더니 그가 가까이 오매 물어 이르시되 41)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이르되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42)예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매 43)곧 보게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를 따르니 백성이 다 이를 보고 하나님을 찬양하니라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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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금은 평양 시내로 편입된 지역이지만, 해방 직후만 해도, 평양시 외곽 농촌에 불과했던 ‘이천리’ 라는 작은 마을에 저는 살았습니다. 대동강변의 마을로서, 노랫말 그대로 ‘꽃피는 산골’ 이었습니다. 저는 교회 곁에 있는 목사사택에서 살았고, 제 옆집에는 저와 동갑인 영철이가 살았습니다.
1949년, 저희 동네에는 인민군 훈련소가 새로 생겼습니다. 초등학교도 군인들의 숙소가 되었고, 저희 교회는 훈련소 교실이 되었습니다. 하루는 영철이가 인민군 병사가 흘리고 간 총알 하나를 길에서 주었습니다. 탄피와 탄환을 분리해서 장난감으로 가지고 놀고 싶었던 모양이었습니다.
길에서 돌멩이로 두드려 탄환을 뽑으려다가, 그만 총알이 폭발했습니다. 그의 얼굴과 가슴에 온통 상처를 입어 피투성이가 되었습니다. 병원에 입원했는데, 몇 달 후에야 만나게 되었습니다. 영철이는 두 손목을 잃었고, 얼굴도 마구 얽었으며, 눈은 앞을 보지 못했습니다.
저는 영철이에게 아무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저, “아프지 않냐?”, “힘들지?”, 이런 질문을 하다가 헤어졌을 뿐입니다. 마음 속으로는, 영철이가 사고 나던 날, 나를 불러내지 않았던 것 만 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2) 제 중고등학교 시절의 절친 둘이 있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창수라는 친구였습니다. 그는 전기공학을 전공했습니다. 남달리 두뇌가 좋아서, 1960년대 초에 이미 일본말로 된 전자공학과 ‘반도체’에 관련된 책을 보고 있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더니, 컴퓨터 칩을 제조하는 공장에서 일하다가 나중에 공장장이 되었습니다.
얼마나 일에만 심취했는지, 그는 자신의 건강을 조금도 돌보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에게서 제가 연락을 받았는데, 그때 그와 저는 이미 환갑을 지난 나이였습니다. 그가 직접 전화하지 못했고, 간병사가 전해 준 말을 들으니, 그가 입원한 수원에 있는 병원으로 어서 와서, 그에게 세례를 주기를 바란다는 본인의 부탁이었습니다.
부산에서 수원까지 기차를 타고 달려가 보니, 친구 창수는 호스피스병실에 누워 있었습니다. 혼수상태였습니다. 누워 있는 그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가 깨어나기를 아무리 기다려도 깨지를 못했습니다.
혹시 깨어난다면, 이 글을 좀 읽어 주라고 하면서, 노트 한 권에다가 ‘내가 믿는 하나님’ 이라는 제목의 글을 길게 썼습니다. 그것이 그의 신앙에 혹시 도움이 될까 해서 쓴 것이었습니다. 며칠 후에 다시 제가 받은 연락은, 창수가 죽었는데, 제가 장례를 해 주기를 바랬다는 전언이었습니다.
3) 제 ‘띠동갑’ 친구가 지금 포항에 살고 있습니다. 그는 성직생활을 마치고 지금은 은퇴하여 그의 부인과 단 둘이 살고 있습니다.
제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우리가 팔팔한 청년이었던 1977년 여름, 교회학교교사 강습회에서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오랫동안 황반변성으로 시력이 점점 나빠져, 백방으로 치료법을 찾아 보았지만, 끝내 시력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의 은퇴예배에 갔었는데, 그는 거의 앞을 못 보게 된 상태였습니다.
앞을 보던 사람이 시력을 잃게 되어 겪는 애로는, 처음부터 맹인으로 살던 사람과는 다른 심한 충격이라는 말을 들어 왔기 때문에, 제가 그의 앞에서 아무 위로할 말이 없었습니다. 다만 그의 말년이 너무 고생스럽지 않기를 빌 뿐이었습니다.
4) 여리고 성에 살던 눈먼 걸인은 참으로 복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는 목청껏 나사렛 예수님을 향해 부르짖어, 예수님의 도우심을 힘입어 눈을 뜨고야 말았습니다.
주님의 그 놀라우신 능력이, 지금 포항에서, 다시 자고 일어나도, 돋는 아침 해를 바라볼 수 없는 저의 ‘띠동갑’ 친구에게 임하셔서, 다만 하루라도, 그의 아내와 사랑하는 세 아들들의 웃음띤 얼굴과, 포항 앞바다, 그리고 평생 그가 펼치던 성경을 볼 수 있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기도> 주 하나님, 시각장애인들에게 은총을 내리사, 긍휼히 여기시고, 여리고 성의 눈먼 사람을 고쳐 주셨듯이, 크신 자비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