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시편 116편 11-19절 : 11)나는 한 때, 몹시 어려워, “믿을 사람 아무도 없다” 하고 말하곤 하였습니다. 12)주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모든 은혜를, 내가 무엇으로 다 갚을 수 있겠습니까? 13)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겠습니다. 14)주님께 서원한 것은 모든 백성이 보는 앞에서 다 이루겠습니다.
15)성도들의 죽음조차도 주님께서는 소중히 여기신다.
16)주님, 진실로, 나는 주님의 종입니다. 나는 주님의 종, 주님의 여종의 아들입니다. 주님께서 나의 결박을 풀어 주셨습니다.
17)내가 주님께 감사제사를 드리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겠습니다. 18)주님께 서원한 것은 모든 백성이 보는 앞에서 다 이루겠습니다.
19)예루살렘아, 네 한가운데서 주님의 성전 뜰 안에서, 주님께 서원한 것들을 모두 이루겠다. 할렐루야. (새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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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세상에서 미더운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믿어도 될 사람이 얼마나 될까 말입니다. 그리 많지 않습니다. 우리가 때때로 탄식조로 뇌까리는 말이 “믿을 사람 아무도 없다”(11절) 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분으로, 미더우십니다. 비록 인간에게는 늘 배반 당하시는 하나님이시지만,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배반하시는 일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오로지 은혜만 베풀어 오셨습니다. (12절)
하나님께서는 성도가 살아 있을 때에도 신실하시며, 심지어 성도가 죽은 후에도 약속을 지키시는 분, 곧 “성도의 죽음조차도 소중히 여기시는” (15절) 분이십니다.
여기서 시편 저자는 시선을 하나님께로부터 자기 자신에게 돌려서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그러면 나는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신실하냐’ 고 말입니다. “내가 주님의 종임을 자부하면서, 과연 주님의 종답게 하나님 앞에 믿음직하게 약속을 지키며 살아 왔는가” 하며 반성해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을 대신하여, “하나님 앞에 서원한 것들을 내가 성전 뜰 안에서 이행하겠습니다” 하며 결행을 다짐하고 있습니다. 왜 하필이면 성전 뜰 안에서, 말하자면, 제물의 생명을 끊는 곳인 성전 뜰에서 하나님 앞에 서원한 것을 이행하겠다고 말했을까요?
약속의 내용이 무엇이었는지는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고 있어도, 그 약속은 엄숙하고, 비록 생명을 걸고서라도 이행할 것임을 약속 드렸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남달리 하나님 앞에 약속을 많이 한 사람입니다. 부제 서품을 받을 때에, 엎드려서 헌신을 약속했었고, 사제 서품 때에, 또 제단 앞에 엎드려서 헌신을 약속 드렸고, 주교 서품 때에 또 다시 헌신을 약속 드렸습니다. 저는 지금 얼마나 헌신된 삶일까요?
그런데 오늘의 본문인 시편 116편을 읽으면서, 저의 못다한 서원이 눈앞에 클로즈업 되고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철없이 말씀 올렸던, 제 서원을 조용히 듣고 계셨던 하나님께, 조금이나마 신실하게 살기를 소망하며 오늘을 살고 있습니다.
<기도> 주 하나님, 서원을 이행하겠습니다. 파송예배에서 간절하게 서원하던 것을 이행하기를 소망합니다. 서품예식에서 서원하던 일을 이행하겠습니다. 성령님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