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마태복음 9장 27-31절 : 27)예수께서 거기에서 떠나가시는데, 눈 먼 사람 둘이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하고 외치면서 예수를 뒤따라 왔다. 28)예수께서 집안으로 들어가셨는데, 그 눈 먼 사람들이 그에게 나아왔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내가 이 일을 할 수 있다고 믿느냐?” 그들이 “예, 주님!” 하고 대답하였다. 29)예수께서 그들의 눈에 손을 대시고 말씀하셨다. “너희 믿음대로 되어라.” 30)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렸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엄중히 다짐하셨다. “ 이 일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아라.” 31)그러나 그들은 나가서, 예수의 소문을 그 온 지역에 퍼뜨렸다. (새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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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군 입대 날을 기다리던 시기에 청주 탑동에 있는 제 집에서 한 동안 지냈습니다. 집 근처에는 평소에 들어가 보지 못했던 맹아학교가 있었습니다. 들어갔더니, 눈 먼 학생들이 축구를 하고 있어서 깜짝 놀라 그들의 경기를 한참 보았습니다. 공이 오면 정확하게 발을 갖다 대곤 했습니다. 공이 구르는 소리만 들어도 공의 방향, 속도를 알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시각이 없으면 청각이 그처럼 발달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시각이 없으면 촉각도 발달하는 모양입니다. 헬렌 켈러의 전기를 읽다 보니까, 그녀가 어린 시절에 가정교사 설리반 선생님에게 점자 읽는 법을 배우고 나서, 점자로 문학, 과학 책들을 섭렵하며 독서에 빠져 들었는데, 얼마나 심취했던지 손가락 끝에서 출혈이 되기까지 읽었다고 했습니다.
시각이 없으면 영적 감각도 보통 사람들보다 뛰어나게 되는 모양입니다. 오늘의 본문에 눈 먼 사람 둘이서 예수님을 향하여 “다윗의 자손이여!” 했다는데, ‘다윗의 자손’이라는 호칭은 ‘메시아’를 의미하는 또 하나의 호칭입니다. 왜냐하면, ‘메시아는 이새의 줄기에서 나온다’ (이사야서 11장 1절) 는 예언이 있었는데, 이새는 다윗왕의 아버지이므로, ‘다윗의 자손이여!’ 라는 호칭은 “구세주이시여!” 라는 말과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과연 이 눈 먼 두 사람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알아본 이들이었습니다. 눈으로 보고 있던 사람들은 알지 못했던 영적 지식과 지혜를, 앞을 못 보던 그들은 도리어 지니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한 집으로 들어가 앉으셨습니다. 그리고 뒤따라 들어온 눈 먼 두 사람의 눈을 만져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당신들의 믿음대로 되기 바라오.” 이렇게 선언하실 때에 그들의 눈이 열렸습니다. 아마도 주님을 그들의 눈으로 뵈었겠지요. 놀라운 일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당부하십니다. 예수님의 능력으로 눈을 뜨게 되었다는 소문을 내지 말아 달라고 경계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나가서 널리 소문을 퍼뜨렸습니다. 일부러 소문을 냈겠습니까마는, 그 눈 멀었던 사람에게, 어떻게 눈을 뜨게 되었느냐고 놀라서 묻는 사람들이 한 둘이었겠습니까? 그러니 말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고, 소문은 퍼지게 마련이었을 것입니다.
불치의 장애를 고치셨다는 소문은 주님의 죽음과 더불어 소멸되고, 세상이 필요로 하는 소문, 곧 예수님은 우리 죄인을 모두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던 구세주이시므로, 그를 믿는 자는 모두 구원을 받게 된다는 복된 소식 마저 묻혀지는 듯했습니다.
예수님이 놀라운 의사라는 소문보다, 세상이 필요했던 소문은, 그 분이 정녕 인류 (나+우리) 를 구원하실 분이시라는 소식이었습니다.
<기도> 저희의 구원의 하나님이시여, 저희 영안을 온전케 하사,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의 존재하심, 하나님의 구원이심, 하나님의 사랑이심을 명확히 보고 깨달아, 하나님의 진리 안에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