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마태복음 16장 24-27절 : 24)그 때에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 오너라. 25)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찾을 것이다. 26)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이득이 있겠느냐? 또 사람이 제 목숨을 되찾는 대가로 무엇을 내놓겠느냐? 27)인자가 자기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자기 천사들을 거느리고 올 터인데, 그 때에 그는 각 사람에게, 그 행실대로 갚아 줄 것이다. (새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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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본문은, 인간이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것 가운데, 가장 귀한 것, 목숨마저도 내어줄 수 있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1900년 경에 한 젊은 미국인 선교사 부부가 한국에 도착했습니다. 남편의 이름은 프랭크 윌리엄스였습니다. 이들은 충남 공주에서 선교활동을 했습니다. 그들은 득남하여 영문명으로 조지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한국명으로 성을 ‘우’ 씨로 하고, 한국의 광복을 기원하면서 ‘우광복’ 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올리브와 로져라는 두 딸도 낳았습니다.
1906년, 논산지방에 부흥회를 인도하러 갔다 돌아오는 길에 아주 큰 비를 만나, 간신히 몸을 피한다는 것이 상여간에서 하루 밤을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곳에는 바로 그 전날 장티푸스로 죽은 사람의 상여가 있었던 곳이었습니다.
윌리엄스 선교사는 그날로 장티푸스에 걸렸고, 대책이 없이 별세하고 말았습니다. 조지(우광복)와 딸 둘을 데리고, 윌리엄스 부인은 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한국을 잊을 수 없어서, 앞날을 모두 한국선교를 위해 바치기로 결심하고 다시 한국으로 왔습니다. 하지만 올리브가 열 한 살 되던 해에 풍토병으로 그의 동생 로저와 함께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윌리엄스 부인은 그후 47년 동안 교회를 설립하고, 복음을 전하면서, 먼저 간 남편과 두 딸의 죽음을 추모하면서 한국을 섬겼습니다. 그 동안 아들 우광복은 한국에서 소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한 후, 미국의 덴버로 가서 의학 공부를 했습니다.
우광복은 한국으로 돌아와, 어머니를 도우며 선교사 일을 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한국이 해방되고 군정이 시작되면서, 당시 군정관인 하지 장군에게 통역이 필요했습니다. 한국어와 영어가 동시에 능통한 사람을 찾던 중, 우광복 선교사가 발탁되어, 한국의 실정에 해박한 그가 여러 가지로 기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의 업적 가운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국 기독교인 50여 명을 추천해서, 건국 과정에서 봉사할 수 있도록 역할을 했다는 점이었습니다. 한국 정부 수립 때에, 특별히 제헌국회 개회식에서, 대한민국이 건국의 시점에서 기도로 나라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던 동기가 우광복 선교사에 기인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생명은 일회성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죽어도, 저렇게 죽어도 단 한 번의 죽음 밖에는 없습니다. 이 생명을 하나님께서 가장 귀히 보시는 죽음으로 바칠 것을, 우리 예수님은 권하고 계십니다.
세계역사는 문명의 발전이 가속화 되고, 동시에 문명의 몰락도 점차 가속도로 빨리 다가오고 있습니다. 미래예측의 전문가들은 말하기를, 각 분야에서 미처 알려지지 못한 수많은 영웅들이 이 시대를 섬기며 살고 있다고 말합니다.
과거에는 주로 선교사들이 목숨을 바쳐 하나님 나라의 일을 했다면, 장차에는 선교사들과 사회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벌써 그 역할을 맡아서 일하고 계신 분들도 많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십시오” (롬12:1) 라고 한 바울의 권고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결정적 충고라고 봅니다.
<기도> 주 하나님, 저희의 삶과 죽음을 통하여, 홀로 영광 받으시기를 빕니다. 오로지 저희의 생명이 주님의 뜻 이루어지는 데에 쓰여지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