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시편 25장에 6-10절 : 6)주님, 먼 옛날부터 변함 없이 베푸셨던, 주님의 긍휼하심과 한결 같은 사랑을 기억하여 주십시오. 7)내가 젊은 시절에 지은 죄와 반역을 기억하지 마시고, 주님의 자비로우심과 선하심으로 나를 기억하여 주십시오. (새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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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중부의 지방버스는 빨리도 달리지만 긴 시간을 달립니다. 고향을 찾아가는 사람들은 즐겁게 지인들과 더불어 떠들어대면서 꽤 소란을 떨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까부터 버스 중턱 창가에 앉았던 40대의 남자 한 사람은 퍽 침울하게 자리에 앉은 채, 바싹 긴장된 표정으로 있었습니다. 곁에 앉았던 사람이 말을 붙여서 알게 된 이 ‘빙고’ 라고 하는 남자의 내력은, 지난 15년 동안 투옥되었다가 만기로 출옥하여 지금 집으로 가는 중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집에는 다만, 결혼한지 2년 만에 헤어진 아내가 혼자 사는데, 아내의 마지막 편지에서 꽤 자기를 원망하는 편지를 썼기에, 불안하다면서 하는 말이, “만약 날 받아 주겠으면, 집 앞의 느티나무에 노란 리본을 매달아 놓으라. 노란 리본이 걸려 있으면, 날 용서하는 줄 알고 집앞 정거장에서 내리겠고, 만약 노란 리본이 없으면, 난 내리지 않고 그냥 버스를 탄 채, 내 갈 데로 가겠소” 라고 답장을 썼다고 했습니다.
삽시간에 버스 안의 손님들에게 이런 사연이 다 퍼졌습니다. 모두 빙고에게 격려의 말을 했습니다. “용기를 내세요. 아내가 기다리실 거에요.” 라고 했습니다. 그렇지마는, 빙고는 여전히 불안했습니다.
빙고의 동네가 점점 가까와지고, 모든 승객들은 초조해 졌습니다. 이제 산모퉁이만 돌면 빙고의 동네가 나타납니다. 잠시 후, 승객들은 모두 ‘와아’ 버스가 떠나갈 듯이 함성을 질렀습니다. 저기 빙고의 동네가 보이고, 먼발치에서도 벌써 바라볼 수 있게 느티나무 한 가득 노란 리본이 나무를 뒤덮고 있었습니다.
모든 승객들의 축하 박수 속에서, 만면에 웃음을 띈 빙고는 버스를 내렸던 것입니다.
성탄절은 집을 떠났던 사람들이 모두 돌아오는 계절입니다. 돈을 벌러 떠난 사람, 학업을 위해 떠난 사람, ‘쓸 데 없는 일로’ 가족과 헤어져 살던 사람, 모두가 집을 향해 돌아오는 계절입니다.
귀가 길을 밝혀 주기 위해서 ‘성탄등’ 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밤새 불을 밝혀, 한밤중에 가족이 도착해도 ‘항상 기다리며 있었음’ 을 알려 주는 마음의 표시입니다.
이것은 언제나 마음 졸이며, 방탕의 길에서, 또 방랑의 길에서 아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한 아버지의 애타는 마음 (누가복음 15장 11절 이하) 을 표현하는 등불이기도 합니다.
저는 ‘돌아온 탕자’의 그림을 두 가지 알고 있습니다. 하나는 렘브란트의 그림인데 그 그림에 관해서는 헨리 나우엔이 책을 한 권 쓸 정도로 묵상을 했기 때문에 제가 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저는 Murillo 라는 이탈리아 화가가 그린 ‘돌아온 탕자’의 그림을 좋아합니다. 제가 아마도 그 그림을 쳐다본 시간이, 모두 합하면 여러 날이 될 겁니다.
제가 공부하던 학교가 미국 알렉산드리아에 있었고, 거기서 차로 약 30분 가면 ‘내셔널 갤러리’ 가 있었기 때문에, 저는 주말이면 아예 점심을 사 들고, 그 그림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오전에 한 시간 정도 오후에 한 시간 정도 바라보다가 돌아오곤 했습니다. 돌아온 탕자의 그림에는 아버지가 있고, 아버지의 품에 안긴 돌아온 아들이 있고, 식구들과 종들이 있고, 송아지 한 마리가 조용히 끌려나가고 있습니다.
그 그림 안에, 인생이 보이고, 인류의 역사가 보이고, 기독교 신학이 보이고, 하나님의 사랑이 보이고, 모든 게 다 보이는 것 같아서 그렇게 좋아했던 겁니다. 그 후로도 가끔 워싱턴 D.C. 근처로 여행하게 되면 꼭 그 그림 앞에 다시 가서 경건하게 앉았다가 오곤 했습니다.
<기도> 주 하나님, 이 복된 성탄 계절에, 하나님 아버지를 마음으로 떠나 있던 사람들이 모두 하나님의 집으로 돌아오는 계절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그리고, 먼저 하나님의 집에 있던 사람들은 돌아오는 사람들의 밤길을 빛으로 환하게 비추는 친절을 보이도록, 주여,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