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4주 : 죽으시려고 태어나신 아기 예수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누가복음 1장 68-79절 : 68)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찬양받으실 분이시다. 그는 자기 백성을 돌보아 속량하시고, 69)우리를 위하여 능력이 있는 구원자를 자기의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다. 70)예로부터 자기의 거룩한 예언자들의 입으로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71)우리를 원수들에게서 구원하시고,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사람들의 손에서 건져내셨다. 72)주님께서 우리 조상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자기의 거룩한 언약을 기억하셨다. 73)이것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려고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이니, 74)우리를 원수들의 손에서 건져주셔서 두려움이 없이 주님을 섬기게 하시고, 75)우리가 평생 동안 주님 앞에서 거룩하고 의롭게 살아가게 하셨다.

76)아가야, 너는 더없이 높으신 분의 예언자라 불릴 것이니, 주님보다 앞서 가서 그의 길을 예비하고, 77)죄 사함을 받아서 구원을 얻는 지식을 그의 백성에게 가르쳐 줄 것이다.

78)이것은 우리 하나님의 자비로우신 심정에서 오는 것이다. 그는 해를 하늘 높이 뜨게 하셔서, 79)어둠 속과 죽음의 그늘 아래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게 하시고, 우리의 발을 평화의 길로 인도하실 것이다.” (새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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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세례 요한이 갓 태어났을 때에, 아기 요한을 바라보며, 아버지 사가랴가 메시아의 탄생을 예언했던 기도입니다.

사람들은 아기가 태어나면, 핏덩이 새 생명을 바라보며, 그 부모를 향해서 먼저 아기의 탄생을 축하해 줍니다. 그리고 아기를 위해서는, 훌륭한 사람이 되거라, 장수하거라, 또는 잘 살아라 하며 축하하는 것이 고금동서의 상례입니다.

하지만, 그런 인사를 받을 처지가 아닌 분이 태어나셨습니다. 우리가 지금 함께 경하하는 성탄일에 태어나신 아기 예수님입니다. 속죄의 제물로 죽으러 태어나셨기 때문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30여 년 후에 달리실 십자가를 저 앞에 바라보며 사신 분이 예수님이셨습니다.

마태복음이 전하는 탄생 이야기에 따르면, 동방의 박사들이 헤롯왕의 궁전에 들러 “새로 난 왕이 어디서 태어났느냐” 고 물었다고 했습니다(마2:2). 임금이 태어났다면, 왕궁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왕도 몰랐고, 신하들도 몰랐고,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다만 성경을 통해서,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것이라고 하는 정보를 알게 되었고, 그래서 헤롯은 군대를 보내서, 그 인근 지역의 두 살 이하의 모든 어린 아기들을 죽였습니다.

복음서들이 소개하는 예수님의 공생애 이야기에서, 많은 병자들의 병을 고쳐 주시며, 줄곧 예수님께서 하시는 부탁이 있었습니다. “내가 고쳐 줬다고 말하지 마시오” 라고. 그러나 이 부탁은 하나마나한 부탁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소문은 퍼지고 퍼져 사람들에게 ‘용하신 의사 예수’ 를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었습니다. ‘용하신 의사’ 는 ‘우리의 해방자’ 인 ‘메시아’ 일런지도 모르겠다는 꿈으로 발전하였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최고의 권력자는, 로마제국의 황제 (가이사) 가, 통치하기 까다로운 식민지인 유다에 파송한 총독 빌라도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실권을 행사하는 대신에, 유일신 종교로 단합된 유대인 사회를 지배하는 방식으로, 간접 통치를 했습니다. 말하자면, 말 잘 듣는 대제사장 임면하는 권한 하나만 가지고도, 온 백성이 세금 (인두세, 통행세) 을 고분고분 바치게 하고, 반란의 기미가 보이는 사람은, 애초에 싹을 잘라 버리는 방식으로 통치할 수가 있었습니다.

이 통치망에 예수님께서 걸려 드신 것입니다. ‘반란의 싹’으로 신고되었고, 아무 죄도 없지만, 동족들에게 ‘신성모독’ 으로 신고되어 왔으니, ‘민심교란죄’ 로 사형을 선고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청년 예수님께서 죽음을 당하시게 되는 공식이었던 것입니다.

‘죽으시려고’ 세상에 탄생하시는 아기 예수님을, 우리가 박수치며 맞이할 수는 없습니다. 송구한 마음으로 경건하게,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과, 더할 나위 없이 기쁜 마음으로 맞이해야 하겠습니다.

<기도> 주 하나님, 대림 4주간을, 2천 년 전 탄생하신 아기 예수님을 묵상하며 회개의 기간을 가졌습니다. 오늘 절기의 마지막 날에, ‘죽으러 오신 아기 예수님이심’을 기억하며 지냅니다. 경건하고, 송구스런 마음으로, 하지만 더할 나위 없이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아기 예수님을 저희 마음에 영접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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