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죄를 지신 하나님의 어린 양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요한복음 1장 29-31절 : 29)다음 날 요한은 예수께서 자기에게 오시는 것을 보고 말하였다. “보시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입니다. 30)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한 분이 오실 터인데, 그분은 나보다 먼저 계시기에, 나보다 앞서신 분입니다.’ 한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분을 두고 한 말입니다. 31)나도 이분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주는 것은, 이분을 이스라엘에게 알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 요한일서 3장 1-6절 : 1)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큰 사랑을 베푸셨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기의 자녀라 일컬어 주셨으니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하는 까닭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2)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만,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와 같이 될 것임을 압니다. 그 때에 우리가 그를 참모습대로 뵙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3)그에게 이런 소망을 두는 사람은 누구나, 그가 깨끗하신 것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합니다.

4)죄를 짓는 사람마다 불법을 행하는 사람입니다. 죄는 곧 불법입니다. 5)여러분이 아는 대로, 그리스도께서는 죄를 없애려고 나타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죄가 없는 분이십니다. 6)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머물러 있는 사람마다 죄를 짓지 않습니다. 죄를 짓는 사람마다 그를 보지도 못한 사람이고, 알지도 못한 사람입니다. (새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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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양’을 말할 때에는 크게 두 가지 용법으로 쓰고 있습니다. 첫째, 주님이 우리들의 목자이시고, 우리(성도들)는 그분의 양떼라는 의미로 쓰입니다. 또 하나는, 예수님께서 대속의 제물로 희생을 당하신 ‘어린 양’ 이라는 의미로 쓰입니다. 그러므로 앞의 것은 성도들을 말할 때, ‘양’ 또는 ‘양떼’ 라고 말하고, 뒤의 것은 ‘속죄양’ 으로 십자가를 지시고, 희생 당하신 주님을 일컬을 때 쓰입니다.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수난의 역사 기록 (마26:36 이하, 막14:32 이하, 눅22:39 이하, 요18;1 이하) 을 보면, 로마의 총독 빌라도는 예수님의 무죄를 말합니다. 하지만, 대제사장 이하 예루살렘의 유대인 실권자들이 예수님을 죽이지 않으면 총독을 로마 황제에게 고발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습니다.

특별히 성전뜰에서 돈벌이를 하던 환전상과, 제물을 매매하는 사람들과의 마찰이 있었을 때 이래로, 성전에서 돈벌이를 하고 있었던 모든 사람들은, 예수가 대제사장의 지위를 흔드는 반동분자라고 고발하면서, 즉시 처벌할 것을 촉구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대제사장과 유대인의 지도자들이 그들의 기득권을 잃지 않으려고, 나사렛 예수를 조속한 시일 안에 죽이기로 작정했던 것입니다.

사도신경은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했는데, 정작 십자가 처형으로 끌고 갔던 것은 대제사장의 무리들이었던 것을 우리는 복음서에서 봅니다. 그렇지만 사도신경에서 “대제사장 가야바와 총독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라고 하지 않은 것은, 당시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었던 자가 빌라도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인간에게서 나신 생명이 아니고 ‘위로부터 임하신’ 예수님께서는 창조주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이셨기 때문에 이 세상이 그런 세상인 것은 이미 다 알고 오셨습니다. 하지만 초월적인 능력을 행사하셔서 인류를 구원하시는 방법은 쓰지 않았습니다.

저는 어려서 ‘도깨비 감투’ 옛날 얘기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도깨비 감투만 제게 있다면 모든 일을 할 수 있으리라는 상상을 했습니다. 도깨비 감투를 쓰고, 투명인간이 되어, 총독 빌라도에게 접근해서 그를 죽여 버리고, 대제사장 가야바도 죽이고, 로마로 가서는 제국의 황제도 죽여 버리면, 세상이 평정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생각은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인간을 깨우치는 데에는 칼이나, 제도를 만들어서 백성을 강제하고 위협하는 것으로 되지 않고, 인간의 죄는 대속해 주시는 길 밖에 없고, 성령으로 인간을 감화하여 인간 스스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길 밖에는 없다고 보셨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희생양으로 베들레헴에 탄생하신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첫 대면 하던 자리에서, 세례 요한은 그를 일컬어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시로다” 하였습니다. 여기서 ‘어린 양’ 이라고 한 것은, ‘희생제사의 제물’이라는 뜻이고, 그 제물을 하나님께서 마련하셨다는 뜻으로 ‘하나님의 어린 양’ 이라고 한 것입니다.

<기도> 주 하나님, 저희를 멸망으로 끌어 가는 죄와 배반의 근원을 없애기 위해서 대속의 제물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송구스런 마음으로 예수님을 저희 마음에 영접합니다. 십자가로 대속하신 예수님의 공로로 저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지극하신 사랑 앞에 두 손을 들고 항복하며 회개합니다. 주 하나님, 저희를 영원토록 구원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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