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마가복음 2장 18-22절 : 18)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은 금식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예수께 와서 물었다.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파 사람의 제자들은 금식하는데, 왜 선생님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습니까?”
19)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혼인 잔치에 온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금식할 수 있느냐? 신랑을 자기들 곁에 두고 있는 동안에는 금식할 수 없다. 20)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터인데, 그날에는 그들이 금식할 것이다.”
21)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대고 깁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하면 새로 댄 조각이 낡은 데를 당겨서, 더욱더 심하게 찢어진다. 22)또,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담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하면 포도주가 가죽 부대를 터뜨려서, 포도주도 가죽 부대도 다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가죽 부대에 담아야 한다.” (새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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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새파 사람들이나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금식을 하고 있었다고 한 것을 보면 그 날이 월요일이거나 아니면 목요일이었던 모양입니다. 하필이면 그 날에 사람들이 예수님께 와서, 왜 금식을 하지 않느냐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물었습니다. 예수님께 듣기 거북한 질문을 함으로써, 사람들에게 악평을 듣게 하고자 했던 의도가 엿보입니다.
요사이 우리나라 대선 후보들이 다른 후보의 여론을 나쁘게 만들고자 상대방에게 듣기 불편한 질문을 던지는 것과도 흡사합니다.
예수님은 당당하게 대답을 하셨습니다. 세 가지 비유를 들어서, 아주 친절하고도 알아듣기 쉽게, 왜 금식을 하지 않는지를 설명해 주셨습니다.
1)본문 19절에서 말씀하시기를, 결혼식에 축하하러 온 사람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는 금식하는 것이 결례이지 않느냐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신랑’으로 비유한 것은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을 뜻하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인류와 함께 계시는 동안은, 열심히 따라다니며 하나님의 복음을 듣고, 정성껏 영접하는 것이 온당한 일 아니겠느냐는 말씀이셨습니다.
2)본문 21절에서는, 낡은 옷을 기울 필요가 있다면, 뻣뻣한 생베 조각을 갖다 대고 깁는 사람은 없다고 비유하셨는데, 이것은 낡은 유대인의 율법 신앙에다 새로운 ‘옷감’(기독교 신앙)을 이어 붙일 수는 없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이어서 20절에서,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터인데, 그 때에는 금식을 해야 할 것이라” 하신 말씀은, 장차 예수님께서 당하실 수난을 예고하신 말씀이었습니다.
3)세째 비유는, 21절 이하에서 새 포도주는 새 가죽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비유입니다. ‘낡은 가죽 부대’ (유대교 율법 신앙) 에 ‘새 포도주’ (‘믿음’으로 구원 받는 기독교 신앙) 를 담으려면 갈등을 일으킬 수 밖에 없어서, 새 포도주가 낡은 가죽 부대를 터뜨리고 말 것이라는 뜻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비록 몸은 유대교에 담고 계셨지만, 유대교와 기독교는 결별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천명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저는 유대인 기독교인을 만난 일이 있었습니다. 그가 말하기를, 예루살렘에도 적지 않은 기독교인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유대인 사회에서 기독교인은 극소수라고 했습니다. 어려서부터 회당 교육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기독교로 개종하려면, 취업, 결혼이 당장 힘들어지고, 아브라함이 친족과 고향 땅 우르를 떠난 것처럼, 일시 천애고아가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비록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들도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지금껏 사귀던 세속의 친구들로부터, 생활습관, 인생관, 사고방식에 단호한 결별을 고해야 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새삼스런 결별’은, 비신자들의 눈에는 ‘배신’으로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눈에는 ‘장한 결별’로 환영 받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기도> 주 하나님, 오늘도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는 이들이 세속과 결별하는 용기있는 일들이 많아지게 해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형식적인 금식, 형식적인 예배에 진력이 나신 하나님께, 참 기쁨을 맛보시도록 해 드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