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시편 51편 16-17절 : 16)주님은 제물을 반기지 않으시며, 내가 전제를 드리더라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17)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제물은 찢겨진 심령입니다. 오, 하나님, 주님은 찢어지고 짓밟힌 마음을 멸시하지 않으십니다.]
한 번 회개하는 것으로도 죄와 잘못은 용서를 받습니다. 하지만 ‘회개하는 마음’은 언제나 간직하고 살아야 옳습니다. 회개와 용서로써 인간이 완벽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눈에 자신이 어떻게 비추어질 것인가를 마음 속에 생각하며 사는 것이 옳습니다. 그러므로 예배에 나올 때마다 예배는 회개의 마음으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회개하는 마음을 하나님께서 늘 반겨 주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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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10장 11-12, 18, 23-24절 : 11)모든 제사장은 날마다 제단에 서서 직무를 수행하면서 똑같은 제사를 거듭 드리지만, 그러한 제사가 죄를 없앨 수는 없습니다. 12)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죄를 사하시려고, 단 한 번의 영원히 유효한 제사를 드리신 뒤에 하나님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18)죄와 불법이 용서되었습니다, 죄를 사하는 제사가 더 이상 필요 없습니다…. 23)또 우리에게 약속하신 분은 신실하시니, 우리는 흔들리지 말고, 우리가 고백하는 그 소망을 굳게 지킵시다. 24)그리고 서로 마음을 써서 사랑과 선한 일을 하도록 격려합시다.]
구약의 제사는 끝났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동물을 잡아 바치는 제사를 드리지 않습니다. 왭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속죄제로써 모든 제사를 끝내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기쁨으로 십자가 앞에서, 우리들이 드릴 ‘산 제물’의 제사 (롬12:1) 를 바치도록 하십시다. 그리하여 우리 예배자들은, 세상에 나아가, 사랑을 실천하고, 선한 일을 힘쓰며, 세계 속에 복음을 전하는 산 제사를 드리라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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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6장 7-13절 : 7)빌립이 예수께 이렇게 대답하였다. “이 사람들에게 모두 조금씩이라도 먹게 하려면, 빵 이백 데나리온 어치를 가지고서도 충분하지 못합니다.” 8)제자 가운데 하나이며 시몬 베드로와 형제간인 안드레가 예수께 말하였다. 9)“여기에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는 한 아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10)예수께서는 “사람들을 앉게 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 곳에는 풀이 많았다. 그래서 그들이 앉았는데, 남자의 수가 오천 명 쯤 되었다. 11)예수께서 빵을 들어서 감사를 드리신 다음에, 앉은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시고, 물고기도 그와 같이 해서, 그들이 원하는 대로 주셨다. 12)그들이 배불리 먹은 뒤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남은 부스러기를 다 모으고, 조금도 버리지 말아라.” 13)그래서 보리빵 다섯 덩이에서, 먹고 남은 부스러기를 모으니,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 (새번역)
한 아이의 소박한 도시락이, 남자만 해도 오천 명이나 되는 큰 무리 앞에 무슨 요기 거리가 된다고, 사람들을 풀밭에 둘러앉으라 하셨겠습니까? 하지만 예수님의 눈에는, 떡 다섯 개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이 백 데나리온, 곧 오늘날 한국의 약 2천 만원 어치 이상의 엄청난 분량의 빵”으로 보이셨던 것입니다.
주님의 눈에는 얼마나 헌신하는 사람의 수가 많으냐, 거기에 얼마나 유능한 사람이 많으냐, 스펙이 어느 정도인가가 문제되지 않습니다. 한 사람의 사랑스런 헌신이 있기만 하면, 그 헌신을 필요한 분량만큼 크게 쓰십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세상 속에서 역사하시는 방식입니다.
허드슨 테일러가 만일, “저 혼자서 저렇게 드넓은 중국 땅의, 아직 복음을 들어 보지 못한 십 수 억의 사람들에게, 어떻게 복음을 다 전한단 말입니까?” 했다면, 아마 지금도 중국 내륙에는 복음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비록 반기독교적인 문화에 젖었던 중국 땅에, 유물론 통치자들이 지난 70년 간 중국교회를 그렇게 짓밟고 짓밟았어도, 교회는 그 어느 나라보다 왕성하게 살아서 역사하는 곳이 바로 중국입니다.
<기도> 주 하나님, 저희가 헌신을 아끼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인간의 눈치를 보지 말고, 저 자신이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가를 나타낼 정성과 용기를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