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마가복음 4장 35-41절 : 35)그 날 저녁이 되었을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바다 저쪽으로 건너가자.” 36)그래서 그들은 무리를 남겨 두고,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갔는데, 다른 배들도 함께 따라갔다. 37)그런데 거센 바람이 일어나서, 파도가 배 안으로 덮쳐 들어오므로, 물이 배에 벌써 가득 찼다. 38)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고 계셨다. 제자들이 예수를 깨우며 말하였다. “선생님, 우리가 죽게 되었는데도,아무렇지도 않으십니까?”
39)예수께서 일어나 바람을 꾸짖으시고, 바다더러 “고요하고, 잠잠하여라” 하고 말씀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고요해졌다. 40)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왜들 무서워하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41)그들은 큰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서로 말하였다. “이분이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까지도 그에게 복종하는가?” (새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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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 우리가 죽게 되었나이다” 이것은 예수님의 제자들의 울부짖음이었습니다마는, 지금 우리들의 울부짖음이 되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우리 인류가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죽을는지도 모르는 사태에 빠져 있지 않습니까?
인류가 경험했던 몹쓸 전염병들도 마침내 헤치고 나왔는데, 이번에도 그렇게 될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도 있기는 하지만, 비관적인 예측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지금처럼 바이러스가 변이를 계속하면서, 이윽고 인류가 극복하지 못할 상황으로까지 뻗어나간다면, 인류의 역사가 이 코로나로 말미암아 끝날 수도 있다” 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사망자 통계 수치만 보고 있던 우리가, 바로 곁에서 잘 알고 지내던 분들의 죽음의 소식까지 듣게 되니까, 우리들 입에서 절로 나오는 울부짖음이 있습니다. “주여, 우리가 모두 죽게 되었나이다. 왜 가만히 계십니까? 주무십니까?”
저처럼 설교자인 사람들은 곧잘, 우리들의 고통스런 상황에 대해서 말하기를, ‘고통을 아무 의미없이 주시는 법은 없다’ 라고 말합니다. 저도 지난 2년 동안 코로나 상황을 거치고 있는 제 주위 사람들에게 “이것은 하나님의 싸인(징조)입니다” 하고 말해 왔습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지요.
인류가 하나님 앞에서 항상 ‘바벨탑의 배반’을 반복해 왔습니다. 오늘의 세계가 그 어느 시대 못지않은 반역의 시대이지 않습니까?
물론 고난에 의미가 있습니다. 2년의 코로나 상황을 지나오면서, 기껏 우리들의 영적 자각이 거기까지 밖에는 오지 못한 것입니까? 지금껏 인류의 과학문명이, 반도체, 사차원, 오차원의 재생의 구상이, 코로나 하나도 극복하지 못할 만큼 유치한 것이었다는 사실이 입증이 되고 말았는데, 이제 인본주의도, 과학주의도 설 곳이 없게 되었으니, 신본주의의 시대가 올 것이라며 기염을 토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So what?
제자들도 파도가 철썩거리기 시작할 때에는 그러다 말겠지 하면서, 그저 묵묵히 배를 저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점차 파도가 강해졌습니다. 물이 넘쳐 배 안으로 들이쳤습니다. 그런데도 그러다 말겠지, 우리가 갈릴리에서 한 두 번 겪은 게 아니니까, 했습니다. 하지만 물이 배에 가득 차 오르고 있을 때에, 예수님을 깨웠습니다. “선생님, 저희가 죽겠습니다” 이렇게 외쳤던 것입니다.
<고통에 답하다>의 저자 팀 켈러 목사는, “지금, 예수님을 생각하며 감사할 수 있다” 고 말합니다. 근심이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죽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는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 온대로,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 이웃을 사랑하기를 계속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소망을 하나님께 두고 사는 우리가, 영원한 나라를 바라보며 사는 우리가, 코로나 아니라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며, 영원한 나라를 바라보며, 호들갑 떨지 말고, 계속해서 배를 젓고 있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주님께서 타고 계신 배인데요. 저기 배 고물에 주무시고 계신 분은 우주를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기도> 주 하나님, 하나님과 함께 항해하고 있는 저희들의 삶인 것을 잊지 않게 해 주시옵소서. 왜 믿음이 이리도 적으냐, 다시는 꾸지람을 받지 않게 해 주시옵소서. 코로나로 인해 먼저 가신 분들도,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에서, 저희보다 먼저 환영을 받고 있을 줄을 믿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