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드릴 두 가지 제사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히브리서 13장 10-16절 : 10)우리에게는 한 제단이 있습니다. 그런데 유대교의 성전에서 섬기는 사람들은 우리의 이 제단에 놓은 제물을 먹을 권리가 없습니다. 11)유대교의 제사의식에서 대제사장은 속죄제물로 드리려고 짐승의 피를 지성소에 가지고 들어가고, 그 몸은 진영 밖에서 태워버립니다.

12)그러므로 예수께서도 자기의 피로 백성을 거룩하게 하시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13)그러하므로 우리도 진영 밖으로 나가 그에게로 나아가서, 그가 겪으신 치욕을 짊어집시다. 14)사실, 우리에게는 이 땅 위에 영원한 도시가 없고, 우리는 장차 올 도시를 찾고 있습니다.

15)그러니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끊임없이 하나님께 찬미의 제사를 드립시다. 이것은 곧 그의 이름을 고백하는 입술의 열매입니다. 16)선을 행함과 가진 것을 나눠주기를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이런 제사를 기뻐하십니다. (새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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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예루살렘 성문 밖으로 끌려 나가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인류의 죄를 위하여 속죄의 제사를 드리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 모두는, 예수님처럼 우리가 하나님께 바쳐야 할 제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드릴 제사는 속죄의 제사가 아닙니다. 하지만 ‘영원한 도시가 아닌’ (14절) 이 세상 속에서, 예수님처럼 치열하게, 우리들은 두 가지 제사에 전념해야 합니다.

1) 복음을 증거하는 입술의 제사 <15절>

우리 입술로 복음을 증거할 때면, 우리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있는 시간입니다. 목사였던 제 아버지는 한 주간에 평균 12 차례의 설교를 했습니다. 그 밖에도 심방기도, 전도, 신앙상담 등에서, 입술로 복음을 전하던 것까지 합하면, 하루 종일 쉴 새 없이 말씀을 준비해야 했습니다. 가장 역점을 둔 것은 주일예배 설교였습니다. 아무래도 회중이 많은 집회가 중요했을 것입니다.

비록 설교자가 아니더라도, 우리 입술의 복음 증거가, 단 몇 마디 대화의 기회 밖에 없다 하더라도, 말씀을 준비했다가, 말씀이 필요한 때에, 몇 마디 전하는 것이 진정 제사장의 제사의식 만큼이나 정성들여 준비해야 하는 제사입니다.

우리의 전도활동은 보석처럼 빛나는, 하나님 앞에 드리는 제사입니다. 힘써 준비하시고, 이 입술의 제사를 드려야 할 때를 만나면 빛나게 제사를 드리도록 하십시다.

2) 구제의 제사 <16절>

불쌍한 ‘소자’를 돕는 일은, 예수님을 섬기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마25:14-30) 이 제사를 막을 세력은 세상에 없습니다. 마음 놓고 구제를 합시다.

기독교계에 구제를 위한 단체가 참으로 많습니다. 이 단체들의 활동을 통해서도, 우리는 구제를 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때로 구제금의 횡령 배임의 구설수에서 자유롭지 못한 단체들도 있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이것은 우리들의 구제의 제사를 파괴하려는 사탄의 술수입니다.

이 모든 단체들이 성실하게 일을 해 주기 바랍니다. “떡을 배급하려면 떡고물은 떨어지게 마련이라” 고 하는 속담이 있지만, 떡고물만 전달되고, 떡은 삼켜 버리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저는 은퇴 이후에 세계 속의 몇 나라를 방문하면서, 우리 나라가, 세계 속에서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지를 실감했습니다. 교회를 통해서, 자선 단체를 통해서, 또 비정부(NGO) 단체를 통해서 여러 나라들의 가난 극복의 길을 터 주고 있습니다. 이런 일을 볼 때마다, 그 단체들 속에서 일하고 있는 한국의 성도들의 리더십을 느끼며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기도> 주 하나님, 저희들의 입술의 복음 증거와, 저희들의 따뜻한 구제의 손길을 통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받으옵소서. 이 제사가 저희의 생애를 통하여 날마다 계속되게 힘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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