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역자 마리아’와 ‘방해꾼 유다’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요한복음 12장 1-8절 : 1)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가셨다. 그 곳은 예수께서 죽은 사람 가운데에 살리신 나사로가 사는 곳이다. 2)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를 베풀었는데, 마르다는 시중을 들고 있었고, 나사로는 식탁에서 예수와 함께 음식을 먹고 있는 사람 가운데 끼여 있었다. 3)그 때에 마리아가 매우 값진 순 나드 향유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 발을 닦았다. 온 집안에 냄새가 가득 찼다.

4)예수의 제자 가운데 하나이며 장차 예수를 넘겨줄 가룟 유다가 말하였다. 5)“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지 않고, 왜 이렇게 낭비하는가?” 6)(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가난한 사람을 생각해서가 아니다. 그는 도둑이어서 돈자루를 맡아 가지고 있으면서, 거기에 든 것을 훔쳐내곤 하였기 때문이다.)

7)예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로 두어라. 그는 나의 장사 날에 쓰려고 간직한 것을 쓴 것이다. 8)가난한 사람들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지만, 나는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는 것이 아니다.” (새번역)

* * * *

예루살렘 동남쪽 언덕 5리 정도 떨어져 있는 작은 마을 베다니는, 적지 않은 수의 환자들이 살던 마을이었다고 합니다. 환자들이 예루살렘 당국에 재심 청구를 하고서, 하회를 기다리며 모여 살던 곳이 베다니 마을이었다고 합니다. (‘중동의 눈으로 성경읽기’, 김동문 목사 글)

오늘 본문의 평행본문인 마태복음 26장 6절 이하에 보면, ‘나사로의 집’ 이라 하지 않았고, “나병환자 시몬의 집” 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말하자면, 진성 나환자인가 여부를 확인 받고 싶었던 사람의 집인 듯 합니다.

집이야 초라했겠지요. 하지만 주님을 대접하던 마음이 극진했습니다. 물이 흔치 않은 유목민의 풍속으로는, 손님을 맞이할 때, 손님의 머리나 발에 향수를 몇 방울 떨어뜨려 주는 접대습관이 있습니다.

마리아는 그가 아끼던 개인재산, 우리 돈으로 약 3천 만 원 가치가 되는 나드 향유를 주님의 머리와 발에 쏟아 부어 주님을 맞이한 것입니다. 한 두 방울만 흘려도 몇 시간 동안 지속되는 향기인데, 한 병을 다 부어 드렸으니, 그윽한 향기가 온 동네에 몇 날 동안 진동했을 것입니다.

주님을 존경하고, 온 힘을 다해 주님을 지지해 드리고 싶었던 자신의 의지를 향유에 담아, 정성으로 주님의 머리와 발을 닦아 드렸습니다. 더구나, 여자들이 누구나 소중히 여기는 자신의 머리털로, 주님의 발을 닦아 드렸다는 것은, 주님을 향한 사랑과 헌신의 뜻을 표시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가룟 유다 같은 사람은, 이를 예수님께 연정을 품은, 품행이 좋지 않은 행위로 곡해를 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런 불순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깨끗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주님을 맞이했던 정숙한 여인의 모습이었습니다.

가룟 유다는 마리아를 핀잔하며 말하기를 “값진 향유를,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했으면 좋았겠는데, 왜 향유 한 병을 다 허비한단 말인가” 하면서 비난했습니다. 이 유다의 비난을 주님께서 제지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가만 두어라. 이 여인은 나의 죽음을 준비해 주는 것이다” 하셨습니다.

유다는 며칠 지나서, 은전 삼 십을 받고 스승인 주님을 팔아 넘겼고, (마26:15) 팔리신 주님은 대제사장과 로마총독의 흉계로 죽음을 당하십니다.

이처럼, 베다니에서 한 방에 둘러앉은 무리 가운데, 한 사람 마리아는 온 마음을 기울여 메시아이신 예수님의 지지자로서 헌신의 뜻을 보였고, 또 한 사람, 스스로 주님의 제자라며 눈속임을 했던 가룟 유다는 주님을 배반할 뜻을 더욱 굳혀 가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베다니에서 열렸던, 주님을 위한 잔치에 동석했다면, 마리아를 따라 주님의 동역자로 마음을 드릴 수가 있었을 터입니다.

<기도> 주 하나님, 저희가 오늘도 헌신의 삶과, 위선의 삶 사이에서 살고 있습니다. 저희들의 분별력이 약해지거나 혼동을 일으키지 않도록 붙잡아 주시고, 진심으로 주님 편에 서서 살도록 인도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