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마태복음 7장 7-12절 : 7)“구하여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그리하면 너희가 찾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어 주실 것이다. 8)구하는 사람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사람마다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는 사람에게 열어 주실 것이다. 9)너희 가운데서 아들이 빵을 달라고 하는데 돌을 줄 사람이 어디에 있으며, 10)생선을 달라고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어디에 있겠느냐? 11)너희가 악해도 너희 자녀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사람에게 좋은 것을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12)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여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본뜻이다.” (새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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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있는 한 교회의 목사님이 ‘적극적 사고’ 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 분의 기독교 신앙관을 설명한 소위 ‘설교집’ 이었습니다. 저도 그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소극적 사고보다 적극적 사고가 인간에게 얼마나 유익하고, 희망적이고, 건강에도 좋을 것이라는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적극적 사고’가 기독교 신앙일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낙망에 빠진 유대인들을 위해서, 하나님의 나라라는 ‘적극적 사고’를 전파하신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건 심리치료를 위해서 세운 가설이 아닙니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살면 얼마나 건강에 좋겠느냐 하는 일시적(또는 장기적) 최면이 아닙니다.
결국 그 목사님의 교회는 한때 미국에서 제일 부자교회로 이름 나더니, 지금은 자취없이 사라지고 말았다고 합니다. 적극적 사고가 끝난 모양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심리치료를 위한 말씀이 아닙니다. 적극적 사고를 위한 제언이 아니란 말씀입니다. “찾기까지 찾아라, 그러면 찾게 될 것이다.” 이런 권유로 들었다면, 말리지는 않겠지만, 그런 권유가 아니라는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가령, ‘알 카포네’ 라는 거대한 조폭의 우두머리가 있었습니다. 그도 신념이 있었기에 한때 그 거대한 조폭 집단을 이끌었을 것입니다. 그가 아무리 ‘된다, 된다, 기필코 될 것이다’ 이런 신념으로 조폭을 이끌었다 해서, 그가 이 마태복음 7장 7절을 그의 신념으로 삼았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아버지, 이 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시옵소서” 라고 기도하십니다. 얼마나 간절했던지, 피와 땀이 흘렀다 했습니다. 그토록 부르짖은 예수님의 기도에 하나님은 응답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 라는 예수님의 기도만 하나님께서 응답하셨습니다.
인간의 뜻대로 하는 기도는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않으십니다. 다만, 구하기를, 하나님의 뜻에 맞게 구하면, 찾아도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게 찾으면, 문을 두드려도 하나님께서 온당하게 생각하시는 문을 두드리고 있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주실 것이고, 보여 주실 것이고, 열어 주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문맥으로 읽어야 합니다. 12절 결론에 가서 봅시다.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여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본뜻이다.” 남들이 나에게 이렇게 해 주었으면, 또는 저렇게 해 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이 있다면, 우리가 바라는 것을, 남들이 해 주기를 기다리지 말고, 우리가 먼저 그렇게 남을 섬기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중심교훈입니다.
“율법서와 예언서” 라는 말은 간단히 “성경” 또는 “구약성경” 이라는 말과 동의어입니다. “이것이 성경의 본뜻이다” 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 성경의 본뜻(황금률)을 이루기 위해서, 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린다면,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기도> 주 하나님, 저희가 헛된 것을 찾아 헤매지 말게 하옵소서. 진정 하나님의 고귀하신 사랑을 배우며 살아서, 그 사랑이 저희 삶의 목적이 되고, 기도가 되어서, 이를 위해 저희가 간구할 때에 주 하나님의 응답이 있게 될 줄 믿습니다. 이것이 저희의 간증이 되고 찬송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