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음성 1] 이사야서 1장 10, 16-20절 : 10) “너희 소돔의 통치자들아! 주님의 말씀을 들어라.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여라. … 16) 너희는 씻어라. 스스로 정결하게 하여라. 내가 보는 앞에서 너희의 악한 행실을 버려라. 악한 일을 그치고, 17) 옳은 일을 하는 것을 배워라. 정의를 찾아라. 억압받는 사람을 도와주어라. 고아의 송사를 변호하여 주고 과부의 송사를 변론하여 주어라.”
18)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오너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빛과 같다 하여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며, 진홍빛과 같이 붉어도 양털과 같이 희어질 것이다. 19) 너희가 기꺼이 하려는 마음으로 순종하면, 땅에서 나는 가장 좋은 소산을 먹을 것이다. 20) 그러나 너희가 거절하고 배반하면, 칼날이 너희를 삼킬 것이다.” 이것은 주님께서 친히 하신 말씀이다.
** 범죄한 나라, 유다를 향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적은 것이 이사야서입니다. 66장에 달하는 이사야서의 서론 부분이 바로 이 1장 본문입니다. 죄를 지적하시지만, 회개하고 고치면 소망이 있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들의 죄도 우리를 소망 없게 만듭니다. 하지만 회개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고침을 받으면, 새 소망의 사람이 됩니다. 우리 죄가 “주홍빛 같아도, 양털과 같이 희어질 것이다” 하셨습니다. 얼마나 희망의 말씀입니까?
[음성 2] 마태복음 23장 1-5, 8-12절 : 1) 그 때에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은 사람들이다. 3) 그러므로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르지 말아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는 않는다. 4) 그들은 지기 힘든 무거운 짐을 묶어서 남의 어깨에 지우지만, 자기들은 그 짐을 나르는 데에 손가락 하나도 까딱하려고 하지 않는다. 5) 그들이 하는 모든 일은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하는 것이다. …
8)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는 호칭을 듣지 말아라. 너희의 선생은 한 분 뿐이요, 너희는 모두 형제자매들이다. 9) 또 너희는 땅에서 아무도 너희의 아버지라고 부르지 말아라. 너희의 아버지는 하늘에 계신 분, 한 분 뿐이시다. 10) 또 너희는 지도자라는 호칭을 듣지 말아라. 너희의 지도자는 그리스도 한 분 뿐이시다. 11) 너희 가운데서 으뜸가는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12)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 (새번역)
** 저는 사람들에게 ‘랍비’(성경교사) 라는 호칭을 많이 들으며, 두 자녀에게 ‘아버지’라는 호칭을 듣고 있습니다. 저는 ‘지도자’라는 호칭을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말씀입니까? 아마 그럴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것은 그 옛날 2천 년 전에도, 또 지금에도 통용되어야 할 금기라고 말할 수는 없다고 주석가들은 말합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불러야지, 뭐라고 부르며, 선생님을 향해서 선생님이라고 불러야 하지 뭐라고 부르냐는 것이지요.
그래도,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데에는 애끓는 예수님의 하소연이 있습니다. 아버지 답지 않은 아버지가, 선생님 답지 않은 교사들이, 지도자 답지 않은 지도자들이 너무도 허다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봅니다.
물론, 2천 년 전 예수님 당시에, 이중인격적인 바리새파 율법교사들의 위선을 한탄하시는 말씀이었음이 분명하지만, 그러나 오늘날에도 이 본문을 읽으면서, 말씀에 동감하며, 바리새인이 꾸중 듣게 된 이유를 자신도 지니고 있음을 안타까와하는 모든 이들에게도 귀히 여김을 받는 본문이 되었습니다.
<기도> 주 하나님,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고요히 자신의 모습을 봅니다. 주홍빛 죄로 온 몸이 더려워졌던 초라한 모습을.. 이중인격적인 허울로 죄를 가리워 보려고 애쓰던 위선적인 행태를.. 스스로에게서 발견합니다. 주 하나님, 이 죄스런 모습을, 주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히 씻어 주셔서, 귀한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을 주시오니, 감사드립니다. 이 감사의 마음을 오늘도 잊지 않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