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13일 – 죽음의 때를 아시는 고통

<교회력에 따은 말씀 묵상>

마태복음 20장 17-19절 : 17)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면서, 열두 제자를 따로 곁에 불러놓으시고, 길에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18) “보아라, 우리는 지금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다.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넘겨질 것이다. 그들은 그에게 사형을 선고할 것이며, 19) 그를 이방 사람들에게 넘겨주어서, 조롱하고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달아서 죽게 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사흘째 되는 날에 살아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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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태복음은 예수님께서 죽음의 예언을 세 번 하셨다고 말합니다. (16:21, 17:12 -23, 20:17-19)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는 장차 당하실 죽음에 대해서 정확한 예견을 하고 계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어떤 과정으로 돌아가실 것인가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알고 계셨습니다.

죽음을 예견하고 있는 사람이 죽음의 장소로 가고 있는 심정을 생각해 보셨습니까? 사람들은 그렇게 안 합니다. 도망칩니다. 죽음을 피하기 위해서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피하시지 않고 뚜벅뚜벅 죽음의 길을 가셨습니다. 구세주 메시아로서의 사명, 곧 대속의 제물이 되시기 위해서 구세주의 길을 확실하게 가셨습니다.

[2]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인자가 … 넘겨짐을 당하고, 조롱을 당하고, 죽는다” 고 말씀하십니다. ‘인자’는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을 말할 때에 사용하신 별칭입니다. ‘인자’는 아시는 대로, ‘사람의 아들’ 이라는 말의 한문 표기입니다.

이 ‘인자’ 라는 말은, 다니엘서 7장 13절에 나오는 메시아(구세주) 예언에서 ‘메시아’ 라는 말을 대신해서 사용한 단어였습니다. 히브리어로 ‘케바르 에나쉬’ (‘인간의 자손처럼 보이는 이’) 라는 말의 풀이입니다. 그는, 사람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살고 계시지만, 실제로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구세주’ 라는 뜻입니다.

[3] 18절과 19절에 보면, “그에게 사형을 선고할 것이며, 그를 이방 사람에게 넘겨주어서, … 죽게 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사흘째 되는 날에 살아날 것이다” 라며, ‘그’ 라는 삼인칭 단수의 ‘그 사람’ 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분이 누구일까요? 이 말씀을 하고 계시는 예수님 자신이셨습니다.

‘나’ 라고 스스로 앞세우지 않으시며, 구세주가 당하실 일을 제자들이 잘 이해하도록 설명하고 계셨습니다. 얼마나 자애로우신 주님입니까?

[4] 19절 말미에 보면, “그는 사흘째 되는 날에 살아날 것이다”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것이지만, 사흘째 되는 날 다시 살아나실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이것을 보면서, 몹쓸 사람들은 ‘짜고 치는 고스톱’ 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나중에 살아날 것을 안다면, 못 감당할 것이 뭐겠냐는 겁니다.

과연 그럴까요? 생각해 보십시오. 모르고 당하는 죽음, 가령 우크라이나 국민이 피난 가다가 느닷없이 러시아의 폭탄에 맞아 죽는 죽음이 더 고통스러울까요, 아니면 뻔히 앞에서 다가오고 있는 십자가의 위협 앞에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다가가서 죽는 죽음이 더 고통스러울까요?

또, 비록 사흘째 되는 날에 다시 살 것이라 해도, 당장에 당하는 죽음이 얼마나 두렵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도 말씀하시기를 “여자가 해산할 때에는 근심에 잠긴다. 진통할 때가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를 낳으면, 사람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기쁨 때문에, 그 고통을 더 이상 기억하지 않는다” (요한16:21) 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여성도들이 아마도 남성도들보다 주님의 고통을 더 잘 공감할 것 같습니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길에서 주님은 저 멀리 우뚝 선 십자가를 바라보며 가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의 도성 예루살렘이, 하나님을 만나는 성전이 서 있는 저 곳, 예루살렘이 주님을 죽이려고 기다리고 있음을 아시면서, 비장한 마음으로 걷고 계셨습니다.

<기도> 주 예수 그리스도여, 저희의 구원을 위하여, 십자가의 고통, ‘해산의 고통’을 겪으신 것을 생각합니다. 주님의 수난을 통하여, 주님의 모진 고통을 통하여, 저희의 죽을 목숨은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 고마우신 은혜를 날마다 잊지 않고, 저희가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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