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3주일 –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누가복음 13장 1-9절 : 1) 바로 그 때에 몇몇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갈릴리 사람들을 학살해서 그 피를 그들이 바치려던 희생제물에 섞었다는 사실을 예수께 일러드렸다. 2)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런 변을 당했다고 해서, 다른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더 큰 죄인이라고 생각하느냐? 3) 그렇지 않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망할 것이다.

4) 또 실로암에 있는 탑이 무너져서 치여 죽은 열여덟 사람은 예루살렘에 사는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죄를 지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느냐? 5) 그렇지 않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망할 것이다.”

6) 예수께서는 이런 비유를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자기 포도원에다가 무화과 나무를 한 그루 심었는데, 그 나무에서 열매를 얻을까 하고 왔으나, 찾지 못하였다. 7) 그래서 그는 포도원지기에게 말하였다. ‘보아라, 내가 세 해나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얻을까 하고 왔으나, 열매를 본 적이 없다. 찍어 버려라. 무엇 때문에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

8) 그러자 포도원지기가 그에게 말하였다. ‘주인님, 올해만 그냥 두십시오. 그 동안에 내가 그 둘레를 파고 거름을 주겠습니다. 9) 그렇게 하면, 다음 철에 열매를 맺을지도 모릅니다. 그 때에 가서도 열매를 맺지 못하면, 찍어 버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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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본문에서 계속해서 반복하고 있는 주님의 말씀은,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망할 것이다” 하시는 말씀입니다.

언제인가 강남의 ‘삼풍백화점’이 한창 영업 중인 낮시간에 건물 전체가 그냥 무너져 내려앉은 일이 있었습니다. 말 그대로 아비규환의 떼죽음을 당했습니다.

또 어느 해에, 출근길이 바쁘던 아침시간에, 한강 성수대교 거대한 다리 상판이 그대로 강물에 빠진 일이 있었습니다. 그 위를 지나던 승용차들이 사람이 타고 있는 채로 물에 가라앉은 것입니다. 이런 비참한 죽음이 있었습니다.

예상치 못했던 불상사가 옛날이나 오늘날이나 일어납니다. 왜 하필이면 그 시간에 사고 지점에 있다가 그 봉변을 당한단 말이냐, 이런 탄식조의 질문이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흔히, ‘아마도 그들이 남달리 죄가 많았던 모양이다’, 이런 생각을 할는지 모르지만, 예수님의 대답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아니다. 그들이 남달리 죄가 많아서가 아니다. 너희들도 회개하지 않으면, 그런 일을 당할 수 있다” 고 잘라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역으로 뒤집으면, ‘그들이 떼죽음을 당한 것은,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라는 선언처럼 곡해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사고를 볼 때면, 남의 죄를 탓하려 하지 말고, 너 자신의 죄를 살펴 회개하는 기회로 삼으라” 하신 말씀인 것입니다.

신약성경에서 회개의 본을 보인 이가 누굴까요? 저는 바울을 들고 싶습니다. 그는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뵈온 후, 한 방에 땅에 엎어졌습니다. 그리고는 새 사람이 되어, 다메섹으로 들어갑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으로 돌변했고, 남은 생애에 변절함이 없이, 순교하는 날까지 힘써 복음의 사도로 살았습니다.

반대로, 신약성경에서 가장 회개의 기회를 많이 가졌는데도, 끝까지 회개하지 않고 영원한 멸망으로 간 대표적인 사람이 누굴까요? 가룟 유다일 것입니다. 그는 주님께 발탁되어, 열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남보다 셈이 빨라서, 제자들 무리의 회계 담당을 맡았습니다. 하지만 못미더울 회계였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제자들을 둘씩 짝지워 복음을 전하게 했을 때에, 누구와 짝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입으로 복음을 전하고 다니기도 했을 것입니다. 능력을 베풀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여간 사도 훈련을 3년간 받았습니다.

누구보다 머리가 빨라, 베다니에서 마리아가 향유를 주님의 머리에 병 채로 붓고 있을 때에, 그것을 아까워하며 말하기를, ‘너무 낭비하는군.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자선이라도 할 것을..’ 했습니다. 주님께서 “그냥 두어라. 나의 장례를 위해 준비해 주는 일이니까..” 하셨을 때에, 그는 마음에 깨달음이 있어야 옳았습니다. 그러나 뻔뻔스럽게도 여전히 자신의 모반을 추진하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유월절 잔치를 나누며, 주님께서 “너희 중에 나를 팔 자가 있다” 하셨을 때에, 그는 천연덕스럽게 주님께 질문했습니다. “주여, 저를 두고 하시는 말씀입니까?” (마태26:25) 이때에 주님께서는 부인하지 않으십니다. “네가 말했다” 라고까지 말씀하십니다. 그때에 그가 회개하고 거꾸러졌던들 그는 구원 받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끝내 회개하지 않습니다.

가룟 유다의 몇 안 되는 기록을 읽을 때마다, 정말 기분나쁜 사람을 만난듯 언짢아집니다. 하지만, 마치 거울 속에서 제 얼굴을 들여다보듯, 가룟 유다를 보게 됩니다. 회개하기를 끝끝내 거절하던 저의 모습을 보기 때문입니다. 저의 안일이, 저의 평안이, 주님의 일보다 훨씬 중요했던 저의 습관적 선택이 저를 고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에, 저 자신이 아니더라도, 저를 고발하면서, “저 자가 천국에 영접받게 된다면, 적어도 나는 천국을 사양하겠습니다” 라고 주님 앞에 저를 고발할 자가 있으면 어떻게 하느냐는 말입니다. 날마다 회개의 생활이 그치지 않도록 기도해야 옳습니다.

진정 구원은, 저의 공로가 아니라, 주님의 은혜입니다.

<기도> 주 하나님, 오늘 당장에라도 주님께서 데려 가시고자 하시면 데려 가실 수 있는 제 가련한 영혼을 구원하여 주시옵소서. 아직 심판을 유예하고 계신 시간 동안에, 주님 앞에 확실하게 회개합니다. 주님의 구원의 은혜에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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