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20일 – 걸레에서 십자가를 본다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시편 95편 1-2, 6-11절 : 1) 오너라, 우리가 주님께 즐거이 노래하자. 우리를 구원하시는 반석을 보고, 소리 높여 외치자. 2) 찬송을 부르며 그의 앞으로 나아가서, 노래 가락에 맞추어, 그분께 즐겁게 소리 높여 외치자. … 6) 오너라, 우리가 엎드려 경배하자. 우리를 지으신 주님 앞에 무릎을 꿇자. 7) 그는 우리의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그가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가 손수 이끄시는 양 떼다.

오늘, 너희는 그의 음성을 들어 보아라. 8) “므리바에서처럼, 맛사 광야에 있을 때처럼, 너희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아라. 9) 너희의 조상들은 그 때에, 내가 한 일을 보고서도,나를 시험하고 또 시험하였다. 10) 사십 년을 지나면서, 나는 그 세대를 보고 싫증이 나서 ‘그들은 마음이 빗나간 백성이요, 나의 길을 깨닫지 못하는 자들이구나’ 하였고, 11) 내가 화가 나서 ‘그들은 나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할 것이다’ 하고 맹세까지 하였다.” (새번역)

* * * *

예수님의 ‘십자가 길’을 묵상하는 이 사순절 40일을 위하여 쓴 글은 아니지만, 어쩌면, 우리들의 십자가 묵상을 그리도 본질적으로 돕는 글이라고 생각되어, 여기에 길게 인용합니다.

글을 쓴 이는, 충남 아산 석정마을의 벧엘교회에서 목회하시는 채희동님입니다. 그가 쓴 책 ‘걸레질하시는 예수’ 에서 인용합니다. (2007년에 이 책을 선물하신 믿음의 동지 장영화 교우에게도 감사를 드립니다.)

“요즘에 내가 묵상하는 주제는 ‘걸레’이다. … 걸레는 자신의 몸으로 더럽고 먼지 낀 곳을 닦고 닦아 깨끗하고 아름답게 만든다. 만약에 이 세상에 걸레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 세상은 온통 오염덩어리요, 시궁창보다 더 더러워서 살기 힘든 곳이 될 것이다. …

이 세상이 이나마 살 만한 것은 이처럼 소리 없이 빛도 없이 자신의 몸으로 걸레의 삶을 살아가는 생명들이 있기 때문이다. 걸레가 이 세상을 살린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어느 날 이 위대한 걸레라는 놈에게 말을 걸었다. .. “넌, 어떻게 네 몸으로 그렇게 더러운 곳을 구석구석 닦을 수 있니? 나는 더러운 곳이나 오물이 많아 냄새나는 곳이면 코를 막고 돌아서는데, 너는 참 대단하다.”

“… 난 걸레로 사는 게 보람 있다. 너도 한번 나처럼 살아봐.” “뭐? 더러운 걸레처럼 살아보라고?” “네 스승 예수도 그렇게 살았잖아.” “……”

‘네 스승 예수도 걸레처럼 살았잖아.’ 라는 걸레의 말에 갑자기 숨이 멎는 것 같았다. 뭐? 예수가 걸레처럼 살았다고? 한동안 말을 못하고 멍하니 있는 나에게 걸레는 조금 풀이 죽은 표정으로 말을 한다. “그런데 난 누군가가 나를 움직여야 걸레가 될 수 있어. 어느 누구도 내 몸을 움직여주지 않으면 세상을 닦는 걸레가 될 수 없는 거지. 내가 세상을 닦는 걸레가 되게 하는 것은 나 자신이 아니라, 바로 너야.”

그렇다. 걸레는 누군가가 손으로 들고 닦아야 걸레이다. 홀로 걸레일 수는 없다. 이 걸레를 바라보면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십자가였다. 십자가 역시 누군가가 짊어져야 십자가이지, 짊어지지 않는 십자가는 그저 나무토막에 불과하다.

그렇구나. 십자가야말로 이 세상의 걸레이구나. 예수께서 십자가를 짊어지셨기에 예수는 우리의 주님이 되셨고, 그 십자가가 우리를 살리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십자가를 너무 추상적으로, 혹은 교리적으로, 신학적으로만 생각한다. 십자가는 문자 속에, 신학 속에, 교리 속에 있지 않고 우리의 삶 속에 있어 우리가 언제든지 손에 쥐고 닦아야 하는 걸레인지도 모른다. 예수께서 자신의 생명을 다 바쳐 짊어지고 세상을 사랑으로 가득 채우신 십자가, 그것은 바로 오늘 내 손에 들려진 걸레이다.”

<기도> 주 하나님, 더러운 곳을 깨끗하게 하는 걸레를 닮은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주님의 십자가를 더욱 깊이 깨닫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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