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누가복음 15장 17-24절 : 17) 그제서야 그는 제정신이 들어서, 이렇게 말하였다. ‘내 아버지의 그 많은 품꾼들에게는 먹을 것이 남아도는데, 나는 여기서 굶어 죽는구나. 18) 내가 일어나 아버지에게 돌아가서, 이렇게 말씀드려야 하겠다.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 앞에 죄를 지었습니다. 19) 나는 더 이상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삼아 주십시오.’
20) 그는 일어나서, 아버지에게로 갔다. 그가 아직도 먼 거리에 있는데, 그의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서, 달려가 그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 21)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 앞에 죄를 지었습니다. 이제부터 나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22) 그러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말하였다. ‘어서, 가장 좋은 옷을 꺼내서, 그에게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겨라. 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내다가 잡아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24) 나의 이 아들은 죽었다가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그래서 그들은 잔치를 벌였다. (새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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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택 목사는 찬송가 317장 (성공회성가 421장) 의 작사자입니다. “(1절) 어서 돌아오오. 어서 돌아만 오오. 지은 죄가 아무리 무겁고 크기로 주 못 담당하고 못 받으시리요. 우리 주의 넓은 가슴은 하늘보다 넓고 넓어. (2절) 어서 돌아오오. 어서 돌아만 오오. 우리 주는 날마다 기다리신다오. 밤마다 문 열어놓고 마음 졸이시며, 나간 자식 돌아 오기만 밤새 기다리신다오. (3절 생략)”
전 목사는 불행하게도 이 찬송의 글대로, 자신의 아들이 가출하여, 오랜 세월 밤낮으로 문을 잠그지 않고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분이었다고 합니다.
저는, 전 목사의 집 나간 아들이 나중에 어떻게 되었는지가 궁금했습니다. 전 목사는 소설가 이광수와 더불어 워낙 이름난 작가여서, 60년대에도 가끔 출판사를 방문하러 종로에 나오곤 했습니다. 저는 60년대에 종로에 직장이 있었기 때문에, 혹시라도 만나게 되면 실례를 무릅쓰고 여쭤 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1968년 겨울, 저는 한 슬픈 소식을 들었습니다. 전 목사님 내외 분이 종로에 있는 기독교서회에 다녀가면서, 노인 내외가 손을 잡고, 전차를 타려고 빙판이 되어 있는 길로 내려섰다가 그만 지나가던 자동차에 받혀서 비명횡사하고 말았습니다.
그가 등단한 작품 ‘화수분’을 연상케 하는 사건이었습니다. 단편소설 ‘화수분’은 이렇게 끝맺습니다. “이튿날 아침에 나무장사가 지나가다 그 고개에 젊은 남녀의 껴안은 시체와 그 가운데 아직 막 자다 깬 어린애가 등에 따뜻한 햇볕을 받고 앉아서 시체를 툭툭 치고 있는 것을 발견하여 어린 것만 소에 싣고 갔다.”
가난을 ‘죄’처럼 여기던 남편 화수분이 돌아오기를 기다려, 고갯마루에서 밤늦게까지 기다리던 아내가 미처 남편을 못 만난채 몸이 식어가지만, 자기 자식 만은 부디 잘 살기를 바래서 그 추운 겨울에 아기를 부둥켜 안고 산길에 쓰러졌는데, 밤 늦게 돌아오다가 아내를 발견한 화수분이 자기 몸으로 아내와 아기를 자기 품에 안은 채 죽습니다.
전 목사 내외 분은 불행하게 갔지만, 복된 찬송을 남겨서, 긴 세월을 기다리고 계신 하나님의 심정을 우리에게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그가 작사한 찬송만 고마와할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집을 떠나 살고 있다면 어서 속히 하나님의 집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고, 또 이미 하나님의 집에서 살고 있는 이들은, 아직 하나님의 집으로 돌아오지 않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속히 돌아올 수 있도록 힘을 다해 귀갓길을 주선해야 할 것입니다.
<기도> 주 하나님, 하나님의 집을 멀리 떠난 사람들이 돌아오는 주일인 오늘을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저희 자신이 하나님의 집에서 사랑받는 자녀들로 살아가게 하시며, 하나님의 집을 떠난 수많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집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역할을 담당하는 기도의 자녀들로 살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