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간 수요일 – 가룟 유다의 속셈은 무엇이었을까요?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요한복음 13장 21-32절 : 21) 예수께서 …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 넘길 것이다.” 22) 제자들은 예수께서, 누구를 두고 하시는 말씀인지 몰라서, 서로 바라다보았다. 23)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 곧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가 바로 예수의 품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24) 시몬 베드로가 그에게 고갯짓을 하여, 누구를 두고 하시는 말씀인지 여쭈어 보라고 하였다.

25) 그 제자가 예수의 가슴에 바싹 기대어 “주님, 그가 누구입니까?” 하고 물었다. 26)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이 빵조각을 적셔서 주는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다.” 그리고 그 빵조각을 적셔서 시몬 가룟의 아들 유다에게 주셨다. 27) 그가 빵조각을 받자, 사탄이 그에게 들어갔다. 그 때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할 일을 어서 하여라.”

28) 그러나 거기 앉아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 아무도, 예수께서 그에게 무슨 뜻으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를 알지 못하였다. 29) 어떤 이들은, 유다가 돈자루를 맡고 있으므로, 예수께서 그에게 명절에 그 일행이 쓸 물건을 사라고 하셨거나, 또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엇을 주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생각하였다. 30) 유다는 그 빵조각을 받고 나서, 곧 나갔다. 때는 밤이었다. (새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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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가룟 유다의 배반이 없었더라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까요? 아마, 그렇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어떤 경로로든 예수님은 대제사장들과 유대인의 지도자들의 손에 체포되었을 것이고, 재판권을 가지고 있었던 총독 빌라도에게 졸라대서 사형을 당하게 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열 두 제자의 한 사람으로 약 3년간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제자 훈련을 받았던 가룟 유다의 속셈은 무엇이었을까요? 기껏 제자 훈련을 잘 받다가, 왜 막판에 와서 변절을 하게 된 것일까요? 그런 악역을 맡을 사람이 필요해서, 예수님께서 유다를 제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발탁해서, 그 사람이 역할을 할 때가 오기를 기다리셨던 것일까요?

예수님은 연극이나 영화의 연출자가 아니셨습니다. 악역이 필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가룟 유다가, 자신의 역할이 ‘하나님의 구원역사’ 에서 악역을 맡는 것이라는 자각을 하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마케도니아제국과 로마제국의 지배를 동시에 받고 있었던 자기 나라를 해방시키려는 누구 못지않은 애국심에 불타 오르고 있었던 사람으로 보여집니다. 그런데 어느 날, 자기의 꿈을 실현해 줄 것 같은, 나사렛 사람 예수를 만나게 되었고, 그의 가르침 가운데 특별히 ‘이미 지상에 임해 온 하나님의 나라’ 를 말씀하시는 예수님에게서 희망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3년이 가깝도록 기다려 봐도, 하나님의 나라는 성취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유다가 꿈꾸던 ‘하나님의 나라’ 는, 일 천년 전, 다윗의 통치시대처럼, 만방에 위세를 떨치는 강국을 건설하는 일이었는데, 나사렛 예수의 말씀은 그런 왕국이 아니라, ‘사랑, 용서, 하나님의 의’ 가 강조되는 다분히 관념적 이상을 말씀하고 계신 듯했습니다.

그래서 가룟 유다는 스승 예수님과 함께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으로 가던 길에서 그의 마음 속에 한 가지 결심을 합니다. 이번에 예루살렘에 가게 되면 스승 예수를, 대제사장들, 산헤드린 의회원들, 바리새파 지도자들, 사두개파 지도자들, 그리고 빌라도 총독들과 맞장을 뜨게 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누구와 의논할 필요도 없었던 듯합니다.

‘만약 그렇게 맞장을 뜨게 만들어 놓으면, 스승 예수는 논쟁을 잘 하시니까 논쟁으로도, 놀라운 기적을 잘 행하시니까 기적의 능력으로도, 죽은 자를 살리시는 초월적 힘을 지닌 분이니까 어떤 상황에서라도 대적을 물리칠 힘이 있는 분이시다. 일단 상황에 부딪히게 만들자’ 이렇게 생각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그 밤에 대제사장들과 밀통을 한 것입니다. 그들은 밀통의 증거로 은전 30을 유다에게 주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유다가 돈이 탐나서 스승 예수를 팔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만, 그가 은전 30을 받으려고 예수님의 제자가 된 것 같지는 않습니다. 더 큰 것을 노렸던 것으로 보입니다.

유다는, ‘하나님의 통치’ 를 스승 예수님께서 말씀만 하지 마시고, 구체적으로 한 왕국을 설립해서, 예수님이 왕위에 등극하시고, 더러운 권세욕에 가득찬 무리들, 곧 외국인 침략자들과, 대제사장을 비롯한 모든 유대인 권세가들을 일거에 몰아내 달라는 주문을, 예수님께 던지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던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대제사장들과 그의 하수인들이 계획했던대로, 그 목요일 밤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체포되시고, 나약하게 당하기만 하시다가, 금요일 아침에 빌라도 법정에서 군중들의 아우성 소리에 질겁을 한 재판장 빌라도에게 사형선고를 당하고 맙니다. 그리하여, 가룟 유다의 기대는 꺾이어, 예수님의 죽음으로 끝나고 맙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고 나서, 가룟 유다 역시 목을 매고 그날 죽습니다. 양심에 가책이 되었다고 보아야 할까요? 아니면, 조국 광복의 꿈은 역시 아무런 소망이 없는 꿈이었구나, 낙망한 나머지 죽었다고 해야 할까요? 가련한 가룟 유다의 일생은 이렇게 막을 내립니다.

우리들의 생애가 가룟 유다처럼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뜬 구름 잡듯 세상을 살지 마십시다. 진리는 오로지 창조주 하나님께만 있고, 그의 외아들 예수님을 통해서 보여 준 하나님의 복음에만 있습니다. 죽기까지 우리 죄인들을 사랑하신 예수님의 사랑에서 우리들의 삶의 목표를 찾아야 합니다.

<기도> 주 하나님, 저희가, 가여운 가룟 유다의 생애를 살지 않게 도와 주시옵소서. 참된 진리, 곧 예수님의 생애에서 보는 하나님의 사랑, 예수님의 말씀에서 듣는 하나님의 계획에 저희의 꿈과 보람을 두고, 저희가 달려가야 할 길을 끝까지 달리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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