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욥기 14장 7-9, 14절 : 7) 한 그루 나무에도 희망이 있습니다. 찍혀도 다시 움이 돋아나고, 그 가지가 끊임없이 자라나고, 8) 비록 그 뿌리가 땅 속에서 늙어서 그 그루터기가 흙에 묻혀 죽어도, 9) 물기운만 들어가면 다시 싹이 나며, 새로 심은 듯이 가지를 뻗습니다. … 14) … 그러므로 나는 더 좋은 때를 기다리겠습니다. 이 고난의 때가 지나가기까지 기다리겠습니다. 15) 그 때에 주님께서 나를 불러 주시면, 내가 대답하겠습니다. 주님께서도 손수 지으신 나를 보시고 기뻐하실 것입니다.
시편 31편 15-16절 : 15) 내 앞날은 주님의 손에 달렸으니, 내 원수에게서, 내 원수와 나를 박해하는 자들의 손에서, 나를 건져 주십시오. 16) 주님의 환한 얼굴로 주님의 종을 비추어 주십시오.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으로 나를 구원하여 주십시오.
베드로전서 4장 3-5절 : 3) 여러분은 지난날에 이방 사람들이 하고 싶어하는 일을 하였으니, 곧 방탕과 정욕과 술 취함과 환락과 연회와 가증스러운 우상숭배에 빠져 살아 왔습니다. 그것은 지나간 때로 충분합니다. 4) 그들은 여러분이 자기들과 함께 그런 지나친 방종에 빠지지 않는 것을 이상히 여기면서, 여러분을 비방합니다. 5) 그들은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을 심판하실 분에게 사실을 죄다 아뢰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27:62-66절 : 62) 이튿날 곧 예비일 다음날에, 대제사장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이 빌라도에게 몰려가서 63) 말하였다. “각하, 세상을 미혹하던 그 사람이 살아 있을 때에 사흘 뒤에 자기가 살아날 것이라고 말한 것을, 우리가 기억하고 있습니다. 64) 그러니 사흘째 되는 날까지는, 무덤을 단단히 지키라고 명령해 주십시오. 혹시 그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훔쳐 가고서는, 백성에게는 ‘그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났다’ 하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되면, 이번 속임수는 처음 것보다 더 나쁜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빌라도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경비병을 내줄 터이니, 물러가서 재주껏 지키시오.” 66) 그들은 물러가서 그 돌을 봉인하고, 경비병을 두어서 무덤을 단단히 지켰다. (새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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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사순절의 총 40일을 모두 마치는 날입니다. 내일은 광명한 부활의 아침을 맞이하게 됩니다. 어둠과 빛 사이에서, 십자가 처형으로 인한 낙심과 부활의 소망, 그 둘 사이에 있는 날이 오늘, 곧 ‘성토요일’인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의 마음 속에 죄와 어둠의 그림자는 모두 사라지고, 진리와 생명의 부활을 굳게 다짐 받는 오늘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천 년 전,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하고, 각자는 모두 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그 날 낮에, 낮이 밤처럼 캄캄해졌던 일이라든지, 나사렛 예수를 따르던 무리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아무런 저항이 없었던 점이라든지, 진정 죽은 예수가 평소 예언한대로 부활할 것인지가 궁금한 의문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십자가 처형을 주도했던 대제사장들은 각기 혼자서 하루를 회고하면서 이랬을 것입니다. “참, 속 시원하게 해 치웠다. 아주 후련하구만. 그런데 소문에 듣자 하니, 뭐라고? 부활한다고? 제 까짓게 뭔데, 부활을 해? 웃기지 말라고 그래. 인간이 죽으면 그 뿐인데, 무슨 부활을 한다고 큰 소리 쳐? 건방진 것 같으니라고..!”
예루살렘 시민들 가운데는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난 정말, 그 나사렛 예수라는 사람이, 그가 말한 대로, 부활했으면 좋겠어. 얼마나 통쾌하냔 말이야?! 그 오만방자한 대제사장, 로마총독 빌라도가 벌벌 떠는 꼴 좀 봤으면 좋겠다. 그들은 예수를 애써 죽여 놓았지만, 죽인 예수가 살아서 돌아온다? 유월절 예루살렘 성전 큰 잔치에, 그가 살아서 걷고 있으면, 대제사장이 놀라서 자빠질 걸, 그 얼마나 통쾌한 일이냐고?.. 하하하하.”
제자들은 예루살렘 시내 어느 으슥한 곳에 숨어서, 한숨을 쉬면서, 서로 말없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아, 그렇게 맥없이 돌아가시다니! 정말 그토록 나약하신 분인 줄 몰랐다. 평소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서 돌아오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건 희망 뿐이라면 어쩐담.. 죽은 사람을 세 차례 씩이나 일으키셨던 예수님께서 자신도 일으키실 수 있으실까? 대못으로 손바닥을 박았으니, 손이 다 망가지셨을 텐데, 발도 망가지고, 옆구리엔 창으로 찔려서 핏물이 쏟아졌다면서.. 부활하신대도 맥을 못 쓰실 거야..”
여제자 막달라 마리아라든지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가 그날에 어떤 마음으로 ‘사흘째 되는 부활의 날’을 기다리고 있었던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누가복음 기록(눅24:1이하)에 의하면, 막달라 마리아와 그 밖의 여인들이 예수님의 시신처리가 불완전하다고 생각했던지, 시신에 바를 향유를 준비하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부활의 예언을 믿었기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부활의 예언을 믿을 수가 없어서였을까요? 분명치 않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일대기는 전설 속에 점점 묻혀져 가고 있었습니다. 그날 밤, 인류의 첫 부활사건이 일어나기 전날 밤은 이렇게 깊어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주 조용히, 한 큰 사건이 준비되고 있었습니다. 인간이 죽으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죽었다가 다시 살게 되는 한 새로운 역사가 준비되고 있었습니다. 부활! 부활의 일이 준비되고 있었습니다.
<기도> 주 하나님, 저희 죄 많은 인생에게도 부활하여 영원한 나라 백성 되는 길을 열어 주셨음을 감사드립니다. 부활의 아침에 저희도 주님을 뵙게 하여 주시옵소서. 죄악의 권세는 소멸되고, 사탄 마귀의 역사는 끝나고, 오로지 하나님의 주권 만이 온 세상을 광명으로가득 채우는 그 날을 저희도 보게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그 영광나라에서 영원히 주님과 함께 살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