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요한복음 12장 31-36절 (새번역)
[31] “지금은 이 세상이 심판을 받을 때이다. 이제는 이 세상의 통치자가 쫓겨날 것이다. [32] 내가 땅에서 들려서 올라갈 때에, 나는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어 올 것이다.” [33] 이것은 예수께서 자기가 당하실 죽음이 어떠한 것인지를 암시하려고 하신 말씀이다.
[34] 그 때에 무리가 예수께 말하였다. “우리는 율법에서 그리스도는 영원히 살아 계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당신은 인자가 들려야 한다고 말씀하십니까? 인자가 누구입니까?”
[35]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아직 얼마 동안은 빛이 너희 가운데 있을 것이다. 빛이 있는 동안에 걸어다녀라. 어둠이 너희를 이기지 못하게 하여라. 어둠 속을 다니는 사람은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를 모른다. [36] 빛이 있는 동안에 너희는 그 빛을 믿어서, 빛의 자녀가 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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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후 255년 경 ‘헬레나’ 라는 여인이 영국에서 태어나, 후일에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 크로루스의 황후가 되었습니다. 기독교에 대한 모진 박해가 계속되던 시기에, 어떻게 황후가 기독교인이 되었는지는, 어느 기록에도 명확하게 남아 있지 않지만, 헬레나는 아주 신실한 교인으로, 자기 아들 콘스탄틴 대제를 감화하여, 기독교인이 되게 했고, 311년에 기독교를 로마제국의 국교로 삼게 했습니다.
노년의 헬레나는 324년에 성지 예루살렘을 순례하여, 예수님께서 달리셨던 십자가를 발견했습니다. 그 십자가의 일부분을 잘라 아들 콘스탄틴 황제에게도 보내고, 또 일부분은 로마로 보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보관했다고 전합니다.
우리들의 기독교신앙의 중심은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며, 우리는 우리의 죄인됨을 통절하게 자각합니다. 아무 죄 없이 십자가에 달리셨던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들의 죄가 ‘대속’ 되었음을 우리는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볼 때마다 하나님의 극진하신 사랑을 깨닫게 됩니다. 고마운 마음으로 우리는 십자가를 우리들의 생의 출발점으로 삼습니다. 하나님께 구원받은 백성으로, 죄와 마귀를 이겨 승리가 보장된 삶을 살게 됩니다.
일본 기독교사에서 보는 ‘후미에’ (그림 밟기) 라는 박해의 도구는 우리들이 잊어서는 안 됩니다. 1629년 에도 막부가 기독교를 멸절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후미에’ 형상을 밟게 했습니다. 밟고 지나가는 사람에게는 석방을, 밟지 않는 사람에게는 사형을 선고했습니다. 이 모진 제도가 1873년까지 250여 년 동안 지속됐습니다.
그래서 지금껏, 일본인이 기독교인이 되는 일은 생명을 걸고서 기독교인이 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예수를 구세주 (그리스도) 로 고백하는 일은, 자신의 후일의 생명을 온전히 주님께 맡기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를 따라오려고 하는 사람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너라” (마가복음 8장 34절) 하셨습니다.
‘내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힘든 일’이라 해서 다 십자가라고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겪지 않으면 안될 ‘힘든 일’이 십자가일 것입니다. 그것이 초대교회 스테반에게는 복음 증거하는 일이, 사도 바울에게는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일이, 헬레나에게는 로마황제인 아들 콘스탄틴에게 믿음을 전수하는 일이 각각 자기의 십자가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어떤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고 있습니까?
<기도> 주 하나님, 십자가를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게 하옵소서. 십자가를 목에 걸고 다니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게 하옵소서. ‘내’ 십자가를 ‘지고’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