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세상에 희망 두신 증표, 어린이들

<어린이날 묵상> 에베소서 6장 1-4절, 마가복음 10장 13-16절 (새번역)

*** 에베소서 6장 1-4절 : [1] 자녀 된 이 여러분, [주 안에서] 여러분의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이것이 옳은 일입니다. [2]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신 계명은, 약속이 딸려 있는 첫째 계명입니다. [3]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 하신 약속입니다. [4] 또 아버지 된 이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주님의 훈련과 훈계로 기르십시오.

*** 마가복음 10장 13-16절 : [13] 사람들이, 어린이들을 예수께 데리고 와서, 쓰다듬어 주시기를 바랐다. 그런데 제자들이 그들을 꾸짖었다. [14]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것을 보시고 노하셔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린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허락하고, 막지 말아라. 하나님 나라는 이런 사람들의 것이다. [15]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어린이와 같이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거기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16] 그리고 예수께서는 어린이들을 껴안으시고, 그들에게 손을 얹어서 축복하여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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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죄악이 가득한 세상을, 하나님께서 아직껏 소망을 가지고 바라보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려 주시는 현저한 증표가 있습니다. 그것이 어린이들입니다. 아기들이 태어나고,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활발하게 뛰어 놀며, 특별히 진리를 배우러 교회와 학교로 가고 있는 모양을 보고 있노라면, 하나님께서 세상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아직 포기하지 않으셨구나 하고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방정환 선생의 발의로, 오늘(5월 5일)을 어린이날로 지정하게 되었습니다. 어린이들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서 오늘을 공휴일로 정했습니다.

결혼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구에 기인하며, 자식 낳이도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구에 기인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축복이요, 변할 수 없는 인간 DNA입니다. 현대 한국 사회가 결혼을 기피하고, 자식 낳이를 기피하게 된 현상은, 우리들의 경제생활과 우리들의 생활문화가 잘못 뒤틀려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 아버지 어머니는 일곱 남매를 낳으시고, 자녀들에게 훌륭한 교육자로 산, 신실한 신앙인이었다고 회고합니다. 정말 부모에 대하여 감사하고픈 일이 많지마는, 이 지면에서 두 가지 면 만을 소개하려 합니다.

제 부모는, 저희 자녀들이 ‘어른 흉내’를 내는 일을 아주 엄히 금했습니다. 가령, 어른 말투로 말을 한다거나, 어른의 창법으로 노래를 한다거나, 어른의 모양으로 행동하는 것을 보면, 하나도 기뻐하지 않고, 표정이 싸늘해지곤 했습니다. 아이들은 아이들의 말을 하고, 노래를 하고, 행동을 할 것을 바랐습니다.

저희 집의 벽지는 언제나 누더기였고, 창호지는 찢어지고 그 위에 덧바르기를 수도 없이 해서, 만신창이었습니다. 저희 부모는 손님들이 그런 집안 환경을 보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저렇게 활발합니다” 라고 하는 말없이 자랑하는 것 같았습니다. 어린이가 어린이다워야, 어른이 되어서 어른다워진다는 신념에서 그러셨던 것 같습니다.

가난해서 그러기도 했겠지만, 물자절약을 대단히 강조했습니다. 특별히 먹는 음식, 입는 옷, 학용품을 아끼는 습관을 철저히 훈련시켰습니다.

지금도 부모님이 곁에서 말씀하시는 듯, 귓가에 남아 있는 말씀은, “시간을 아껴서, 자거라” 하시던 말씀이 있습니다. 시험 기간이라 하더라도, 잠을 충분히 자는 것이 건강에 첫째되는 습관이라 하여, 밤새 공부해서 학교에 가서 시험을 보는 일은 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아침마다 늦잠을 못잤습니다. 아침이 밝으면, 부모님은 저희들을 모두 깨워 안방에 앉히고는 ‘지난 밤에 보호하사 잠 잘 자게 했으니, 고마우신 주님 은총 일심 감사합니다’ 찬송 66장을 부르고, 성경 한 장을 돌아가면서 몇 절씩 읽고 나서, 아버지가 기도하고, 함께 주기도문을 외우고, 예배는 끝납니다. 그리고는 아침 식사시간이 됩니다.

이것이 저희 집의 일상이었고, 기독교교육이었습니다. 제 부모의 신앙은 장로교 집안으로, 다분히 청교도들의 신앙을 닮았습니다. 제가 나중에 벤쟈민 프랭클린 전기를 읽으면서, 제 아버지가 프랭클린을 닮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엄격한 자기 훈련이라든지, 노동을 사랑하며 사는 점이라든지, 과학적 사고가 습관화되어 있는 점을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제가 부모에게서 받은 가정교육이 기독교교육이라고 믿으며, 제 자식들에게도 그렇게 살려고 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미흡한 점이 많았습니다. 그저 그 가정교육의 본이 대대로 이어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기도> 주 하나님, 저희에게 가정을 주셨음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 가정 안에서 태어나고 자라나는 아이들은 주님의 선물이고, 세상에 소망을 두신 하나님의 증표이오니, 저희가 귀한 선물로 여겨, 하나님의 뜻으로 양육하게 하시며, 진정 내일의 세계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귀하게 쓰시는 일꾼으로 바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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