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선물, ‘평화’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요한복음 14장 27-31절 (새번역)

[27] “나는 평화를 너희에게 남겨 준다. 나는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너희에게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아라. [28] 너희는 내가 갔다가 너희에게로 다시 온다고 한 내 말을 들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아버지께로 가는 것을 기뻐했을 것이다. 내 아버지는 나보다 크신 분이기 때문이다. [29] 지금 나는 그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너희에게 말하였다. 이것은 그 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하려는 것이다. [30] 나는 너희와 더 이상 말을 많이 하지 않겠다. 이 세상의 통치자가 가까이 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나를 어떻게 할 아무런 권한이 없다. [31] 다만 내가 아버지를 사랑한다는 것과, 아버지께서 내게 분부하신 그대로 내가 행한다는 것을, 세상에 알리려는 것이다. 일어나거라. 여기에서 떠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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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세주로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서 “칼을 주려고 내가 온 것이다” 라든지 “불을 지르러 왔다” 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왜 그런 어울리지 않는 말씀을 하신 것일까요?

복음서 한가운데에 “너희는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려고 온 줄로 생각하지 말아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려고 왔다” (마10:34) 고 하셨습니다. 칼을 주려고 오셨다니요? 더구나 문맥을 보면, 식구들 사이에 반목이 일어나서 아버지 어머니와 아들 딸 사이에 서로 싸움이 일어나고, 심지어 죽는 자리에 내보내는 일마저 일어날 것이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세상권력이 복음을 지독하게 탄압할 것이기 때문에, 복음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부모 자식 간에도, 친구지간에도 그토록 못살게구는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뜻으로, ‘칼을 주러 왔다’ 는 극단적인 표현을 하신 것입니다.

또 예수님께서 “나는 이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눅12:49) 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불을 지르다니요? 방화범을 자처하시는 말씀입니까? 그럴 리가 없습니다. 세상에 살인과 방화는, 어느 것이 더 나쁘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방화는 나쁜 일입니다. 몇 백년이 걸려서 이루어지는 삼림을 삽시간에 없애버리는 일이 방화입니다. 그 안에는 수없는 외딴집에 사는 불특정 주민들까지 있는데 말입니다.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는 말씀은, 하나의 은유적 표현입니다. 복음을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 사이에 생기게 될 격렬하게 다투는 분열 현상을 ‘불’ 이라는 단어로 표현한 것입니다. 한 가족 내에서도, 이런 분열이 생길 것이고, 한 집단사회에서도 이런 분열이 생길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왭니까? 복음 자체가 악의 세력을 몰아내는 힘이기 때문입니다. 죄와 정욕과 사탄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 예수님의 복음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본문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나는 평화를 너희에게 남겨 준다” 라고 하신 말씀을 읽습니다. ‘평화’ 라는 말은, 나라와 나라 사이에 군사적으로 갈등하는 전쟁이 없는 상태를 말할 때에 흔히 씁니다.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평화’는,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화해가 이루어진 상태를 ‘샬롬’(평화) 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 화해를 이루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갈라놓은 것은 인간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인간이 죄를 짓는 것은 하나님께 반역하는 행위입니다. 정욕과 죄와 사탄은 다 한 편입니다.

정욕 때문에 죄에 빠지게 되고, 죄에 빠지면, 그것을 기화로 사탄이 그를 자기 종으로 만들고 맙니다. 그래서 사탄이 그런 사람들을 한데 모아서 자기 나라를 세우고, 사탄이 그들 위에 왕으로 군림합니다. 이것이 영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이 죄의 사슬을 인간에게서 벗겨내고, 사탄의 종이 된 인간들을 위하여, 십자가 에 못박혀 대속(벌을 대신 받음으로 죗값을 치루어 주는) 의 피를 흘리고 돌아가심으로써, 죄와 죽음의 세력을 물리치시고, 모든 죄인들을 해방시켜, 하나님과 다시 화해하게 만드셨습니다. 이 일을 이루시려고 예수님은 세상에 오셨던 것입니다.

본문 말미에 보면 “일어나거라. 여기에서 떠나자” (31절)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화해의 작업을 이루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가고 계시던 중이었습니다. 십자가를 지시러 가고 계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평화의 사절’인 제1세기의 바울 사도를 위시해서, 지난 2천 년 동안의 모든 복음전도자들의 공통된 사명은,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과 화해할 수 있는 길을 보여 주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시켜서 여러분에게 권고하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대리하여 간청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화해하십시오.” (고후5:19-20)

<기도>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저희에게 남기고 가신 ‘평화’ 라는 크고 고귀한 선물을 주셨음을 감사드립니다. 이 평화의 선물, 곧 하나님 아버지와 화해할 기회를 감사함으로 받게 하옵소서. 저희가 다시는 죄로 반역하지 말게 하시며, 온전히 하나님의 자녀들로서만 세상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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