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시아 꽃잎에 담긴 하나님의 정성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마태복음 6장 28-31절 (새번역)

[28] 어찌하여 너희는 옷 걱정을 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살펴보아라. 수고도 하지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온갖 영화로 차려 입은 솔로몬도 이 꽃 하나와 같이 잘 입지는 못하였다. [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들어갈 들풀도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들을 입히시지 않겠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31]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 까, 하고 걱정하지 말아라.

* * * *

한국전쟁 직후에 저는 중학교 1학년이 되었습니다. 말이 중학교지, 아직 교사건물을, 철군하지 않은 영국군인들이 쓰고 있었기 때문에, 저희는 여전히 국민학교 때처럼 천막교실에서 공부했습니다. 하지만 국민학교 때는 한 반에 1 백명이 넘는 규모인데 비해서, 중학교는 천막 하나 속에 70 명 가량의 학생이 함께 공부를 했습니다.

모든 선생님들은 다 잊지 못할 선생님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을 읽으면서 생각나는 분이 있었습니다. 생물을 가르치시던 이일구 선생님이셨습니다. 과제물 숙제가 있었는데, 아카시아 꽃 한 송이를 따 오는 것이었습니다.

그 날의 수업은 꽃잎 그리기였습니다. 꽃잎 한 개를 떼어서, 이파리를 순서대로 조심스럽게 떼어내 보라 하셨습니다. 모두는 꽃을 해부했습니다. 몇 조각의 부분들로 나누어졌습니다. 그것을 공책이나, 백지에 그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참으로 조용히 그 각각의 부분들을 노트에다가 그렸습니다. 마치 어떤 식물연구소의 전문가들처럼 아카시아 꽃의 해부도를 작성한 겁니다.

꽃송이는 간단한 꽃으로 보였지만, 꽃잎을 뜯어 놓고 보니까, 신비롭게도 여러 조각들이 조합으로 되어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운데 꽃술이 있고, 그것을 받치고 있는 꽃받침이 있고, 그 모두를 둘러싸는 꽃잎 몇 개가 좌우로 곱게 붙어 있었습니다. 꽃받침 속에는 꿀이 들어있는 꿀샘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각 조각의 모양과 색갈도 그 기능에 따라서 맵시있고 곱게 디자인되었고, 그 전체가 흩어지지 않도록 단단히 조여져 있었습니다. 누가 이렇게 멋들어지게 고안하신 것일까를, 그 생물시간에 우리는 배우게 된 것입니다.

그 선생님 역시 신실한 기독교인이셨지만, 공립학교이므로 복음을 직접적으로 말씀하시진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아카시아 꽃 한 송이 속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정성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세상에 흔하디 흔한 이 아카시아 꽃이 이렇게도 신비로울 줄은 몰랐습니다. 그리고 세상에, 봄이면 지천으로 피는 진달래, 개나리, 민들레, 벗꽃, 철쭉, 수없는 꽃들이 다 제각각 나름대로의 신비를 안고 있다니, 하나님의 엄청난 정성을 일부분이라도 엿보게 되었던 그 날에 저희는 모두 감격했습니다. 정말 멍해져서, 흔히 ‘쓸 데 없는 나무’ 라는 소리를 듣는 저 아카시아나무가 이렇게 정교하게 설계되었다니, 한참 동안 나무를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저 나무 역시 고마운 나무로구나 깨닫게 된 것입니다. 또 고마운 나무를 깨닫게 해 주신 이일구 선생님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이렇게 마음 한 구석 은사님께 감사의 추념을 드리고 있는 아침입니다.

<기도> 주 하나님, 만물을 지으시되, 인간을 위해 가장 좋은 방식으로 지어 주신 하나님께 마음 모아 감사를 드립니다. 지으신 세상을 잘 보존하며, 사랑하고, 고맙게 생각하는 마음으로 감싸 주면서 살아가게 도와 주시옵소서. 저희를 잊지 않고 먹여 주시고, 입혀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올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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