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마태복음 9장 1-8절 (새번역)
[1] 예수께서 배에 오르셔서, 바다를 건너 자기 마을에 돌아오셨다. [2] 사람들이 중풍병 환자 한 사람을, 침상에 누인 채로, 예수께로 날라 왔다.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 환자에게 말씀하셨다. “기운을 내라, 아이야. 네 죄가 용서받았다.”
[3] 그런데 율법학자 몇이 ‘이 사람이 하나님을 모독하는구나’ 하고 속으로 말하였다. [4]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너희는 마음 속에 악한 생각을 품고 있느냐? [5] ‘네 죄가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서 걸어가거라’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서, 어느 쪽이 더 말하기가 쉬우냐?
[6]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세를 가지고 있음을 너희들이 알게 하겠다.” 그리고 예수께서 중풍병 환자에게 “일어나서, 네 침상을 거두어 가지고 집으로 가거라” 하시니, [7] 그가 일어나서, 두려움에 사로잡히고,이런 권한을 사람들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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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풍병 때문에 걷지를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중풍으로 다리를 저는 사람은 중풍증세 가운데 가장 경한 사람입니다. 최소한 반신불수가 됩니다. 저의 아버지가 이런 몹쓸 병에 걸려서 모진 고생을 했습니다.
이런 환자가 예수님 앞에 왔습니다. 자기 발로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이웃들이 그를 ‘침상에 누인 채로’ 들고 와서 예수님 앞에까지 데려다 놓았습니다. 그의 믿음과, 특별히 그를 침상 채로 들고 오느라 수고한 그의 이웃들의 믿음을 크게 보아 주셨습니다.
이 믿음의 사람들을 바라보며, 감격하신 예수님께서는 가장 귀한 것을 베푸시고자 입을 열어 선포하셨습니다. “너의 죄가 용서받았다” 라고 하셨습니다.
율법학자들은 분개했습니다. “자기가 뭔데, 죄를 용서한다고 큰 소리 치냐? 죄를 용서하실 분은 하나님 밖에 누가 있냐?” 이렇게 수군거리고 있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하나님 밖에는 누구도 인간의 죄를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신격을 지니신 예수님께서는, 대속의 제물로 이 세상에 오신 분이십니다. 십자가에서 대속의 제물로 피를 흘려 죽으심으로 모든 인류의 죄를 사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세상에 사셨던 모든 사람들 가운데도, 오직 예수님 만이 “너의 죄를 용서한다” 고 말씀하실 수 있었습니다.
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한 가지 애매한 질문을 하고 계십니다. “‘네 죄가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서 걸어가라’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서, 어느 쪽이 더 말하기가 쉬우냐?” 고 물으십니다. 어느 주석서를 보니까, ‘네 죄가 용서받았다’ 라고 말하는 것이 더 쉽다고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인간으로서는 죄의 용서 쪽이 쉬울 것 같아 보이지만, 대속자이신 예수님께서는 인류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고 죽으셨습니다. 이것이 쉬운 일입니까?
오늘날도 많은 교회들은, 다양한 사회봉사로 교회가 할 일을 다한 것처럼 착각합니다. 가난한 이웃들을 돕고, 병든 이웃들을 돕고, 장애가 있는 이들을 돕고, 홀로 되신 이들을 돕고, 여러 가지의 사랑의 봉사를 합니다. 다 필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도움에 앞서서 가장 긴급하고 요긴한 일은 사람들의 죄의 문제를 하나님 앞에서 해결 받게 하는 일입니다. 즉 영혼구원의 일이 교회의 근본적 과제인 줄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놓치면, 다 잘 해도 일을 그르치고 맙니다.
<기도> 주 하나님, 저희가 저희의 가난의 문제, 질병의 문제, 고독의 문제들을 하나님 앞에, 급히 해결해 달라고 졸라대지 말게 하옵소서. 주 하나님께서 애를 태우시는 죄의 문제를 저희가 보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저희의 가장 긴급한 문제, 곧 죄를 용서받는 일에 먼저 관심을 집중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