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새번역)
저는 중학생 시절에, 나름대로 하나님에 관한 이해를 해 보고자 애를 썼던 일이 있었습니다. ‘하늘에는 하나님이 계시고, 땅에는 약 2천 년 전에 인간이 되어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가 계셨고, 그리고 영으로 우주 속에 태초로부터 영원토록 계시는 성령이 계시다’고 해서, 그러면 ‘기독교는 세 분의 하나님을 섬기는 종교인가’, 이런 기초적인 의문에 너무나 아리송해 졌습니다.
나중에 교회가 제게 베풀어 준 가르침은 다음과 같은 윤곽의 신론이었습니다.
창세기 1장 1-2절에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어둠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물 위에 움직이고 계셨다” 했습니다. 여기서 알게 되는 것은, 우주 삼라만상에는 그것을 모두 지으신 주인이 계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도 알게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함께 계시던 분, 곧 ‘하나님의 영’이 그때로부터 함께 계셨고 함께 활동하셨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1-3절에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이셨다. 그는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모든 것이 그로 말미암아 창조되었으니, 그가 없이 창조된 것은 하나도 없다” 라고 말합니다. 창세기 본문과 마찬가지로 우주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태초로부터 함께 계셨던 분이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에는 이 ‘말씀’이 인간이 되신 예수님이시라고 해설합니다. (요1:14)
잠언 8장 22-23절에, “주님께서 일을 시작하시던 그 태초에, 주님께서 모든 것을 지으시기 전에, 이미 주님께서는 나를 데리고 계셨다. 영원 전, 아득한 그 옛날, 땅도 생기기 전에, 나는 이미 세움을 받았다” 했습니다. 여기서 ‘나’ 라고 지칭한 분은 문맥상으로 ‘지혜’ 라는 한 인격체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지혜’가 요한복음의 ‘말씀’(요1:1) 과도 일치하며, 또 영으로 우리 곁에 계셔서 가장 중요한 지혜, 곧 예수님이 그리스도인 것을 깨닫게 하는 성령의 역할과도 일치합니다. (요일4:1-3)
모든 동물이 숨을 쉽니다. 하지만 그것 하나 하나를 창조하시면서, 그것들에게 숨을 넣어 주셨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유독 인간에게만 숨을 넣어 주셨다고 했습니다. (창2:7) 성경은 ‘영’ 또는 ‘혼’을 의미하는 말로, ‘숨’ 이나 ‘바람’을 뜻하는 단어, ‘루아흐’ 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아마도, 인간에게 숨을 넣으신 것이, 인간에게는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는 영혼을 넣어 주셨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인간의 ‘혼’과 하나님의 성령을 구분하기 위해서 신약성경에는 ‘거룩한 바람’ (프뉴마 하기오스) 이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그 거룩한 바람, 곧 생기가 불어 오면, 에스겔서 37장 1절 이하에 나오는 ‘마른 뼈들이 살아나는 일’ 같은 엄청난 일이 생기고, 요엘서 2장 28절 이하에 나오는 ‘남녀노소들이 모두 비전을 바라보게 되는’ 하나님 나라의 시대가 열립니다.
성령께서는 예수님의 공생애 초기에도 예수님과 함께 계셨습니다. (눅3:22, 4:1)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만나신 자리에서도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으라” 고 말씀하시고,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셨다고 했습니다. (요20:22-23)
하나님께서는 태초로부터 말씀과 함께 계셨고, 성령과 함께 계셨습니다. 말씀으로 일하시고, 성령을 통하여 일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승천하셨습니다. 사도들의 시대가 시작하고, 사도시대의 연속선상에서 교회가 탄생합니다. 그 일의 시작을 설명하는 사도행전 2장은, 태초로부터 계시던 성령께서 특별히 교회의 탄생과 더불어 본격적으로 역사하심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성령께서 강림하시며, 사람들에게 나타난 현상들이 있습니다. 언어가 달라졌습니다. 언어의 장벽이 깨어진 것입니다. 바벨탑 사건 (창11장) 이래로, 인간들 사이에 소통이 끊어졌던 언어가, 모두 다시 소통이 되었습니다. 다른 언어로 이야기해도 모두가 알아듣고 있었던 것입니다. “성령이 시키시는 대로, 각각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행2:4) 했습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시므로, 하나님께서 그러하시듯, 모르시는 것이 없으시고, 못하시는 일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의 질병이 나았고, 사람들의 내밀한 일들을 모두 성령께서 아시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성령 안에서 믿는 사람들이 사랑으로 한 공동운명체가 되어, 유무를 상통하면서 복음을 전하는 일로 그들의 일과를 삼게 되었습니다.
이 전통 속에 2천 년이 흘렀습니다. 이제는 교회가 많이 제도화되어, 수도 단체, 선교 단체, 신앙생활 공동체, 사회복지 활동, 교육활동, 시민계몽 활동, 기독교 정당에 이르기까지 성령 안에서 다양한 시도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지금도 인간 역사 속에서 하시고 계신 가장 중요한 일은, 예수님께서 3년의 공생애 기간에 하신 일들 처럼, 모든 인간들을 구원으로 이끄시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전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는 일, 그리고 성령의 모든 은사들을 통해서 교회가 자라게 하고, 교회의 복음선교활동을 섬기도록 인도하시는 일, 그래서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일에 있습니다.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 너무 다양하고 넓으므로, 한 단어를 사용하기가 힘들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사귐이 여러분 모두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고후13:13) 라고 축복할 때에 ‘사귐’ 이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이 ‘사귐’이라는 말의 뜻은 ‘교제’ ‘소통’ 이라는 단순한 말이 아닙니다. 인간을 구원으로 이끄는 모든 일들의 총체를 뜻합니다. 감화, 위로, 격려, 가르침, 인도, 연합, 소통, 등등의 활동을 모두 담는 단어가 무엇이 있습니까? 희랍어에서는 ‘코이노니아’를 썼습니다. 번역의 한계를 느끼는 사람들은 이 단어를 그대로 쓰고 있습니다.
“성령의 코이노니아가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빕니다. 아멘.”